자전거쪽지 2014.5.2.
: 가볍게 부는 산들바람
- 바람이 가볍게 분다. 햇볕이 따스하다. 좋은 날이다. 이 좋은 날은 무엇을 해도 즐거우리라. 아침부터 신나게 뛰논 아이들이 살짝 졸린 눈치이다. 자전거마실을 다녀오면 작은아이는 재울 수 있을까. 큰아이도 같이 재울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 곁님은 람타학교로 공부를 하러 아침 일찍 시골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서 서운하지만 씩씩하게 논다. 아이들을 달랠까 싶어 자전거를 끌고 들길을 달린다. 어느덧 유채꽃은 모두 졌고, 경관사업 심사가 끝나기 무섭게 논갈이를 한다. 올해에는 마을마다 경관사업비를 잘 받을 듯싶다. 경관사업이 끝났더라도 유채씨가 맺히기를 기다리면 좋으련만, 그냥 갈아엎기만 한다.
- 자전거를 꺼낸 뒤 대문을 닫으려니, 두 아이가 자전거 쓰러지지 말라며 붙잡아 준다. 참 이쁜 아이들이다.
- 오늘은 호덕마을 옆을 끼면서 천천히 달린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왜 여기로 가? 여기 예전에 가 봤는데.” “이쪽 길로도 달릴 때가 있지.”
- 우체국에 닿는다. 도서관 소식지를 스무 통 부친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과자를 몇 점 장만한다. 작은아이는 면소재지를 벗어날 무렵 누나 말을 흉내내며 몇 마디 떠들다가 이내 조용하다. 곯아떨어지기 앞서 마지막 노래 한 마디를 들려준 셈일까. 큰아이도 무척 졸린 얼굴이다. 그러나 큰아이는 참 꿋꿋하게 버티며 더 놀겠다고 말한다. 그러렴. 네가 하고픈 대로 하렴.
- 집에 닿는다. 작은아이를 살살 안아서 방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눕힌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놓고 덮개를 씌운다. 이제는 제비집에 제비가 깃들기에 날마다 누는 똥이 통통 떨어진다. 덮개를 안 씌우면 자전거는 제비똥으로 범벅이 되고 만다.
- 바람이 상그럽다. 꽃가루 묻는 바람이 맑다. 꽃내음 물씬 나는 산들바람이 온 마을과 집을 감돈다. 아이들도 나도 이 봄바람을 먹으면서, 이 오월바람을 마시면서 웃을 수 있다. 가벼운 바람을 맞으면서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자전거로 들마실 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볕이요 바람이며 날이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