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뛰놀도록 하는 마음



  아이들이 뛰놀도록 하려면 걸림돌이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곳에는 자동차가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자리에는 지뢰밭도 철조망도 군부대도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터에는 경찰도 공무원도 교사도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들에는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숲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따사롭게 햇볕이 내리쬐어야 합니다.


  커다란 공장이나 발전소가 있더라도 아이들은 뛰놉니다. 아이들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뛰놀고 싶습니다. 폭탄이 퍼붓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뛰놉니다. 아이들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뛰놀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으로 다그쳐도 아이들은 뛰놉니다. 아이다움을 잊고 애어른이 되고 마는 아이들은 시험으로 다그치면 그만 놀지 못해요. 주눅이 들어요. 그러나, 아이다움을 곱게 건사하는 아이들은 시험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뛰놀 생각을 합니다.


  빈터에 선 자동차는 몹시 그악스럽습니다. 아이들은 가만히 선 자동차 때문에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랄 빈터를 주차장으로 삼으려는 어른은 몹시 끔찍합니다. 아이들은 빈터를 빼앗는 어른 때문에 숨을 못 쉽니다.


  아이들은 공원이나 놀이터만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에서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층집에서 살더라도 방방 뛰고 구를 수 있어야 합니다. 방방 뛰거나 구를 수 없도록 만드는 층집이라면, 이런 층집이 몇 억을 하든 참말 값어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 없도록 만드는 층집에서 왜 어른들은 살림을 꾸리려 할까요? 어른들은 왜 자꾸 ‘아이들이 놀 수 없는 집’을 부동산으로 장만하려 할까요?


  어른이 일터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아야 할까요. 어른은 얼마든지 이리저리 일터를 찾아갈 수 있어요. 어른에 앞서 아이를 헤아려, 아이가 즐겁고 기쁘며 스스럼없이 뛰놀 수 있는 보금자리를 장만할 노릇입니다. 아이가 맑은 바람을 마시고, 아이가 싱그러운 물을 마시며, 아이가 포근한 햇볕을 누릴 데로 보금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곳이 바로 우리가 즐겁게 살아갈 곳입니다. 아이들이 기쁘게 노래하는 곳이 곧 우리가 기쁘게 살림을 가꾸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뒹굴거나 구르는 곳이 곧바로 우리가 스스럼없이 꿈꾸고 사랑을 속삭이는 곳입니다. 몇몇 곳에 공원을 따로 짓는 도시에서 벗어나기를 빌어요. 모든 집과 마을이 공원처럼 푸르고 싱그러우며 조용하기를 빌어요. 시골에서는 농약물결이 사라져서 아이들이 아무 풀밭에서나 드러눕거나 뒹굴 수 있기를 빌어요. 모든 시골과 들과 숲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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