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9. 꽃밥을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면 온몸이 싱그럽습니다. 자동차 없고 아파트 없으며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발전소도 없는 깨끗한 숲에 깃들어 숨을 크게 들이켜면 온몸이 해맑고 푸른 빛으로 거듭납니다. 맑은 바람은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맑게 다스립니다. 숲마실을 즐기는 이들이 숲빛을 사진으로 찍는 까닭을 쉬 알 만합니다. 숲에서 숲바람을 마시면 참말 숲빛이 이렇게 곱네 하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매캐한 바람을 마시면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귀가 째지도록 시끄럽고 어수선한 곳에서 여러 시간 나들이를 하거나 일을 해야 하면, 나들이나 일을 마치고 난 뒤 머리가 멍하기 일쑤입니다. 시끄럽거나 어수선한 데에서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하루가 삶이라면 몸과 마음이 늘 찌뿌둥하면서 어지럽기 마련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흘러야 하는 삶일 때에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릅니다.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유학을 다녀온 뒤 사진을 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은, 시골에서 중·고등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 서건, 우리는 늘 삶이고 사랑이며 사진입니다. 맑고 깨끗한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에도 고운 빛이 서리면서 사진이 됩니다. 매캐하며 시끄러운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 마주하는 모습에도 예쁜 빛이 감돌면서 사진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밥을 차리면서 늘 ‘꽃밥’을 그립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언제나 꽃밥이라고 생각합니다. 들꽃을 하나 꺾어 밥그릇에 살짝 얹곤 합니다. 꽃송이가 매달린 들풀을 나물 삼아서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들꽃을 먹으면서 우리 몸이 들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꽃을 먹으면 우리 몸이 들꽃과 같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들꽃을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눈도 들꽃처럼 되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사진으로 찍거나 바다를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눈길과 눈빛도 숲과 바다처럼 맑고 푸르며 시원하고 싱그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 눈과 넋과 몸이 사랑스레 거듭납니다. 살가운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살가운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 눈길과 삶길과 손길이 살가이 거듭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구경꾼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기면서 스스로 새롭게 하루하루 일굽니다. 아름답게 살고픈 빛을 사진 한 장에 싣고, 사랑스레 손잡고 싶은 꿈을 사진 두 장에 담습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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