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8. 푸름과 빨강
더 예쁜 빛이 없고 덜 고운 빛이 없습니다. 모든 빛은 저마다 예쁘면서 곱습니다. 모든 빛은 다 다른 예쁨과 고움입니다. 더 예쁜 사람이 없고 덜 고운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를 만나건 모두 예쁜 넋과 고운 얼을 마주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제 삶을 가꾸면서 예쁘거나 고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이름난 몇몇 사람을 만나서 이녁 얼굴을 찍어야 값있지 않습니다. 수수한 마을 할매와 할배를 만나서 이녁 얼굴을 찍으면 값없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아이를 찍건 내가 모르는 아이를 찍건 모두 값있습니다. 내가 아는 이웃을 찍건 내가 모르는 이웃을 찍건 모두 값있어요.
이름을 드날리며 사진길 걷는 작가는 이름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람사진’이나 ‘얼굴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진은 이런 사진대로 값이 있습니다. 이름을 드날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진삶 누리는 사람은 이런 삶대로 이름을 안 드날린 수수한 이웃과 동무를 만나서 ‘사람사진’과 ‘얼굴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름난 사람을 찍기에 뜻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온 발자국을 사진으로 담고,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땀흘리고 사랑하며 꿈꾸던 넋을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할 수 있는 사진이 될 때에 뜻있습니다. ‘사람을 찍어 보라’ 하고 말할 적에는 유명인사나 연예인이나 정치꾼을 찍으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곁님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먼저 사진으로 찍으면서 ‘사진에 이야기를 어떻게 담는가’를 돌아보라는 소리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바로 옆자리 동무를 찍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늘 옆에 앉는 동무는 어떤 마음일까요. 어떤 꿈이 있을까요. 어떤 사랑을 가슴에 품을까요. 어떤 빛을 마음밭에 심을까요. 어떤 길을 걸어갈까요. 늘 마주하는 옆짝인데, 옆짝 마음과 삶과 이야기를 얼마나 잘 아는가요.
내 어버이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내 어버이를 마주하면서 내 어버이가 이제껏 살아온 나날과 걸어온 길을 헤아립니다. 내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내 아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 아이한테 어떤 사랑과 꿈을 물려주는 하루를 일구는지 되짚을 수 있습니다.
푸른잎 단풍나무와 붉은잎 단풍나무를 나란히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두 단풍나무는 시골에 있는 폐교 한쪽에서 함께 자랍니다. 우람하게 자란 두 나무가 드리우는 빛깔은 무엇일까요. 사월에 꽃을 피우는 두 단풍나무는 잎빛과 꽃빛이 저마다 어떻게 얼크러질까요.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