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6. 함께 걷는 사진



  네 식구가 함께 걷습니다. 시골버스는 우리 마을 어귀를 두 시간에 한 차례 지나갑니다. 버스 타는 때가 안 맞으면 이웃마을로 걸어갑니다. 네 식구가 이십 분쯤 걸려 이웃마을 큰길로 걸어갑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저 앞에서 걷습니다. 몸도 키도 작으나 걸음이 잽니다. 총총총 날듯이 나비걸음으로 앞장섭니다. 뒤에서 동생이 곁님 손을 잡고 걷습니다. 작은아이는 날마다 다리힘이 붙습니다. 얼마 앞서까지 이 길을 혼자서 걷지 못해 업히거나 안겼으나, 이제는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아이들은 몸이 차츰 자랍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둘레 삶자락을 바라봅니다. 어른들은 마음이 차츰 자랍니다. 어른들은 자라면서 둘레 삶터를 헤아립니다.


  함께 걷는 길을 사진에 담습니다. 네 식구가 걷지만 사진에는 언제나 세 사람만 나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떤 모습인지 사진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사진에 찍힌 식구들 모습을 살피면 사진 찍은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마음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함께 즐겁게 걷는 길이라면, 사진 찍은 사람 모습이 없어도 모두 즐거운 빛이 흐릅니다. 함께 걷되 즐겁지 못한 길이라면, 찍힌 사람도 찍은 사람도 모두 즐겁지 못한 빛이 감돕니다.


  사진이 태어나는 곳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우리 삶을 사진으로 찍든, 이웃이 우리 보금자리로 찾아와서 사진으로 찍든, 모두 삶을 찍습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먼먼 나라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도, 먼 곳에 있는 이웃이 누리는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스튜디오나 사진관에서 찍을 적에도, 이제껏 살아온 발자국이 고스란히 사진에 깃듭니다.


  한 발 두 발 걷습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천천히 찍습니다. 사진은 오늘 하루에 다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에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어 건사할 수도 있으나, 여러 날에 걸쳐 찍을 수 있는 사진이요, 여러 달에 걸쳐 찍을 수 있는 사진이며, 여러 해에 걸쳐 찍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사진감으로 삼았으면,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과 새벽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살펴보셔요. 여러 날에 걸쳐 다시 바라보고, 여러 달에 걸쳐 꾸준히 바라보며,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바라보셔요. 삶길을 함께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내 삶도 이웃 삶도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피어납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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