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한 책
네 식구 함께 고흥에서 신안으로 마실을 다녀온다. 먼 마실이기에 하룻밤을 묵을는지 모른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하룻밤을 묵지 않고 밤에 느즈막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하룻밤을 묵는다면 밤이나 새벽이나 아침에 읽으려고 책을 여러 권 챙겼으나, 나는 내가 챙긴 책을 아예 손조차 대지 못한다. 일곱 살 큰아이는 아버지를 흉내내어 제 작고 빨간 가방에 만화책 한 권과 동시책 한 권을 챙겼다. 큰아이는 차에서 만화책도 읽고 동시책도 읽는다. 신안으로 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읽는다.
큰아이가 부러울까. 부럽다면 부롭지만 안 부럽다면 안 부럽다. 다만, 아이가 낭창낭창 책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즐겁다. 아이가 책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며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잠기고, 아이가 동시책을 들고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꽃을 곱게 피울 수 있었다.
내 책은 하나도 못 읽었으나, 아이가 책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책을 읽었구나 싶다. 내가 손에 책을 쥐지 않아도 아이가 곁에서 책을 노래하듯이 읽으니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좋았다. 이 아이들도 어버이가 잠자리뿐 아니라 여느 때에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즐거울 테고, 여느 때에 어버이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좋다고 느끼겠지.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