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앞에는 나무가 있다



  나무가 한 그루 천천히 자라 이윽고 우람하게 선 곳에 있는 책방에 마실을 가면 즐겁다. 나무를 보면서 즐겁고, 이렇게 굵는 나무를 베어 종이책을 묶는구나 하고 느끼니 고마우면서 즐겁다. 책을 어루만지는 손으로 나무를 어루만진다. 나무를 쓰다듬는 손으로 책을 쓰다듬는다.


  은행나무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잣나무나 소나무로 책을 빚을 수 있을까. 감나무도 탱자나무나 복숭아나무로 책을 엮을 수 있을까. 모를 노릇이다. 아무튼, 나무가 있기에 우리들이 숨을 쉰다. 나무가 있기에 집을 짓는다. 나무가 있기에 책걸상과 옷장을 짠다. 나무가 있기에 불을 때어 밥을 짓는다. 나무가 있기에 연필을 깎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나무가 제 대접을 못 받는다. 나무가 자랄 숲을 함부로 밀거나 없앤다. 나무가 드리울 숲에 골프장이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관광단지를 자꾸 때려짓는 사람들이다. 책을 안 읽으니 나무를 아낄 줄 모를까. 책을 읽으면서도 나무를 사랑할 줄 모를까. 대학생이 늘어나지만 숲은 늘어나지 못한다. 배운 이는 늘지만 숲내음을 맡는 이는 늘지 않는다. 책은 새로 태어나지만 숲은 새로 빛나지 못한다.


  책방 앞에는 나무가 있어 밝고 환하다. 살림집 앞에는 나무가 있어 시원하고 싱그럽다. 마을 앞에는 나무가 있어 푸르고 아름답다. 나무가 있으면서 따사로운 빛이 흐른다. 나무가 자랄 때에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으로 어깨동무를 한다. 나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책을 읽는다. 나무를 가꾸는 손길로 글을 쓴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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