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4.16.
: 노란 물결 사이를 달린다
- 아침에 순천을 다녀온다. 신안에서 순천 헌책방 〈형설서점〉으로 찾아오는 분이 있어서 함께 만난다. 헌책방 아저씨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고흥으로 돌아온다.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는 없기에 이웃 봉서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탄다. 봉서마을부터 집까지 걸어서 온다. 대문을 여니 아이들이 “아버지 왔다!” 하고 외치면서 마당으로 내려온다. 아이들을 안고 쓰다듬다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으로 옮길 짐을 수레에 싣는다. 도서관까지는 자전거를 끌고 간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고 싶으나 짐이 있으니 앉을 틈이 없다. 도서관에 짐을 내려놓고 수레에 태우고 샛자전거에 앉힌다. 자, 유채꽃 가득한 들길을 달리자.
-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바람결에 꽃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센 바람을 맞받으면서 발판을 빨리 굴리지 않는다. 찬찬히 발판을 밟는다. 천천히 꽃을 바라보고 꽃내음을 맡는다. 천천히 들길을 가로지른다.
- 면소재지를 찍은 뒤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큰아이는 유채꽃 들길을 걷고 싶다 말한다. 나도 자전거에 내려서 큰아이와 함께 걷는다. 걷다가 쉬고 또 걷다가 쉰다. 일부러 천천히 걷고 일부러 선다. 한창 무르익는 노란 꽃물결이 곱다. 해마다 봄에, 사월에 맞이하는 어여쁜 빛이다. 올해 사월이 지나면 이 유채꽃은 모두 저물 테지. 마을마다 논을 갈고 논삶이를 하느라 부산하겠지. 바람소리만 흐른다. 새소리는 얼마 흐르지 않는다. 낮에 봉서마을부터 동백마을로 걸어오는 길에 제비 여섯 마리를 들판에서 보았지만, 그뿐 더는 볼 수 없다. 지난해에 마을마다 헬리콥터로 항공방제를 엄청나게 해대면서 제비가 거의 다 죽었기 때문일까. 제비들이 농약바람에 견딜 수 없으니 이곳으로는 오지 말자고 서로 얘기했을까. 너른 들판을 아이와 함께 거닐면서 제비춤을 볼 수 없으니 몹시 서운하고 쓸쓸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