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1. 꽃과 꽃

 


  하늘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하늘을 찍는 한편, 하늘에 깃든 숨결을 찍고, 하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찍습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넋을 사진으로 담고, 하늘과 마주한 내 삶을 사진으로 담으며, 하늘숨 함께 마시는 이웃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머니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무엇을 찍는다고 할 만할까요. 어머니를 마주하는 내 모습과 매무새, 어머니가 살아온 나날과 이야기, 어머니가 그리는 사랑과 꿈, 어머니를 사랑하는 내 마음과 빛, 어머니가 들려주는 웃음과 노래 들을 골고루 사진으로 찍을 테지요.


  매화꽃이 활짝 피어난 우리 집 뒤꼍에서 매화꽃내음을 아이와 함께 맡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는 벚꽃 무늬를 새긴 긴옷을 입습니다. 꽃빛이 곱다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꽃옷입니다. 꽃옷을 입고 꽃나무 앞에 섭니다. 나는 매화꽃을 찍으면서 꽃아이를 찍습니다. 꽃빛과 꽃내음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꽃아이 목소리와 몸가짐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나 스스로 꽃이 됩니다. 스스로 꽃이 되기에 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백두산을 사진으로 찍는 분이 있다면 백두산과 하나가 되기에, 아니 그분 스스로 백두산이 되기에 백두산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픈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스스로 아픈 마음과 몸이 되겠지요. 살가운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스스로 살가운 골목사람이 될 테고,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스스로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마음과 몸이 되리라 느껴요.


  이것을 찍기에 더 좋지 않습니다. 저것을 찍기에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찍습니다. 좋거나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만한 이야기가 있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들려줄 목소리가 있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글을 쓰는 이들은 글을 쓸 까닭이 있어서 글을 써요. 누군가는 전태일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고, 누군가는 쌍용자동차를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지요. 누군가는 박정희나 박근혜를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며, 누군가는 정약용과 정약전을 이야기하는 글을 쓸 테지요. 무엇을 이야기하든 글은 글입니다. 무엇을 찍든 사진은 사진입니다. 스스로 쓰려는 글감에 녹아들면서 글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찍으려는 사진감에 스며들면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꽃과 꽃입니다. 찍는 꽃과 읽는 꽃입니다. 보는 꽃과 ‘(스스로 하나가) 되는 꽃’입니다. 피어나는 꽃과 저무는 꽃입니다. 맑은 꽃과 밝은 꽃입니다. 잠자는 꽃과 숨쉬는 꽃입니다. 노래하는 꽃과 춤추는 꽃입니다. 꽃으로 살고 꽃으로 사랑합니다. 4347.4.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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