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40. 어둠을 밝히는 빛에

 


  빛이 있어 어둠을 밝힙니다. 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짙습니다. 빛이 있는 자리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지거나 그림자가 생기곤 하지만, 그늘과 그림자는 어둠이 아닙니다. 두 가지 모습이요, 두 가지 빛입니다.


  모든 목숨은 힘차게 움직입니다. 힘차게 움직이다가 쉽니다. 눈을 감고 포근하게 잡니다. 쉬거나 자지 않으면서 그저 움직이기만 하는 목숨은 없습니다. 어떤 목숨이든 반드시 쉬거나 자기 마련이요, 쉬거나 잘 적에는 새로운 누리로 갑니다. 이른바 꿈누리예요.


  그늘진 자리에 씨앗이 떨어져도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랍니다. 그늘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은 한결 밝으며 짙습니다. 그늘진 자리에서 꽃이 진 뒤 열매를 맺으면 한결 달콤하며 깊은 맛을 냅니다. 햇빛을 듬뿍 쐬는 자리에서 나는 들딸기도 무척 달지만, 그늘진 곳에서 나는 들딸기는 새빨갛게 빛나면서 매우 달콤해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빛만 살피지 않습니다. 빛을 살피면서 그늘과 그림자를 함께 살핍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진에 드리우는 어둠이란 어둠이라기보다 ‘그늘’이나 ‘그림자’입니다. 어둠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적에는, 어둠은 어둠으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빛’으로 환하며 곱습니다.


  흑백으로 찍는 사진이 아닌 무지개빛으로 찍는 사진에도 빛과 그늘이 함께 있습니다. 꽃그림자가 집니다. 골목집 담벼락 따라 곱게 그늘이 집니다. 깜깜한 저녁이나 밤에 등불을 켜면 둘레는 새까맣지만 등불 언저리는 환합니다. 이때에 어떠한 빛이 우리를 맞이하는 셈일까 헤아려 봅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은 우리 가슴에 어떻게 깃들까 생각해 봅니다.


  그늘진 자리에서도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까닭은, 햇빛이 들지 않더라도 햇볕이 포근하게 감싸기 때문입니다. 건물이나 큰 나무에 가리더라도 볕은 막지 못합니다. 빛은 가로막힐 수 있지만, 빛살은 옆으로 퍼지면서 밝은 기운을 살며시 나누어 줍니다. 빛살조차 꽉 막힌 데에 있더라도 볕은 천천히 스며들어요. 가로막은 벽을 타고 볕이 스며들어요. 볕이 지구별 곳곳을 따사롭게 덥히면서 땅속으로 따스한 볕이 감돌아요.


  사진 한 장 찍을 적에 어떠한 빛을 맞아들이는지 살핍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어느 곳에 그늘이 지거나 그림자가 생기는지 돌아봅니다. 사진 한 장 읽을 적에 빛살과 함께 볕살을 헤아립니다. 사진 한 장 읽으면서 따사로운 기운과 손길과 숨결이 어떻게 퍼지는가 가만히 그립니다.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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