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공무원을

 

 

  책을 읽는 공무원을 만나고 싶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을 읽는 공무원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틈틈이 쪼개어 책을 사랑하는 공무원을 만나고 싶다. 신문과 방송에 널리 이름을 탄 책을 읽어도 좋지. 여러모로 많이 팔리는 책을 읽어도 좋지. 그러나, 조용히 책방마실을 즐기다가 넌지시 책 하나 집어들어 빙그레 웃는 공무원을 만나고 싶다.

 

  책을 읽는 회사원을 만나고 싶다. 회사 일에 바쁘고, 다달이 매출과 결제와 보고소로 빠듯할 테지만, 고단한 하루를 쪼개어 살그마니 책방마실을 하면서 마음을 따사롭게 다스리는 책 하나 만나는 회사원을 만나고 싶다. 날마다 술을 마셔도 좋다. 언제나 일에 치여 아이들을 마주할 겨를이 없다고 하더라도 좋다.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고 10분쯤 책을 조용히 읽다가 사랑스레 잠들 수 있는 회사원을 만나고 싶다.

 

  책을 읽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다. 시골에서는 모내기도 하고 풀베기도 하고 가을걷이도 하고 여러모로 바쁜 일철이 있다. 그런데, 바쁜 일철 언저리에는 한갓진 날이 길다. 겨우내 시골집에서는 느긋하고 호젓하다. 고단한 일을 달래느라 술잔을 기울여도 좋다. 아이도 젊은이도 모두 떠난 허전한 시골마을에서 술잔에 아쉬움과 쓸쓸함을 달래도 좋다. 그래도, 한 달에 한 권쯤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면서 삶을 새로 읽으려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다. 4347.4.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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