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글쓰는 아줌마

 


  밥냄비 안치고 글을 몇 줄 적는다. 설거지 조금 하고서 글을 몇 줄 적는다. 밥물을 살핀 뒤 아이들한테 주전부리 몇 점 주고는 글을 몇 줄 적는다. 밥물을 살피고는 국냄비에 불을 넣고 글을 몇 줄 적는다. 어젯밤 나온 밥찌꺼기를 들고 뒤꼍으로 가서 알맞게 뿌린다. 부엌으로 돌아가는 길에 쑥을 한 줌 넉넉히 뜯는다. 쑥을 뜯는 김에 복숭아꽃을 몇 장 찍고, 매화꽃잎 떨어진 쑥잎을 쓰다듬다가 사진 두 장 찍는다. 밥찌꺼기 담던 그릇을 바깥에서 헹군다. 부엌으로 돌아와 쑥을 헹군다. 다시 글 몇 줄 적는다. 이제 국을 마저 끓이며 간을 볼 테고, 불을 끄기 앞서 글을 몇 줄 쓴 뒤 아이들을 불러 밥 먹으라 부를 테지. 조각조각 쓰는 글은 아이들이 밥을 다 먹은 뒤 설거지까지 끝낸 다음 마무리를 짓는다. 봄날은 바쁘다. 밥을 하랴 풀을 뜯으랴 글을 쓰랴 아이들 쳐다보랴 엉덩이가 어디에 걸터앉을 겨를이 없다.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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