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와 손전화

 


  어제 아침, 서울에 닿아 녹음기 팔 만한 곳을 여러 군데 다니지만 끝내 녹음기를 장만하지 못한다. 문득 떠올라 손전화 기계에 있는 녹음기를 쓰면 될까 하고 써 본다. 잘 녹음이 되지 싶다. 그런데, 두 시간쯤 녹음하고 저장을 하려는데 저장이 안 되고 하늘나라로 사라진다. 왜 저장이 안 되지? 다시 두 시간을 녹음하고 저장하려는데 똑같이 하늘나라로 사라진다.


  처음에 하늘나라로 사라질 적에 ‘내가 잘못 눌렀나?’ 하고 요모조모 살폈는데, 잘못 누르지 않았다. 이래서 소리를 담을 적에는 ‘소리만 담는 기계’를 써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디지털파일이 아닌 테이프를 썼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두 시간 더하기 두 시간, 곧 네 시간 동안 신나게 이야기한 소리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한참 생각한다. 네 시간 이야기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내 마음속에 이 얘기가 싸목싸목 스며들었다. 나중에 다시 소리를 담기로 하고, 마음으로 담은 이야기를 예쁘게 삭히기로 한다. 4347.3.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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