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풀꽃이 즐겁다

 


  통영을 걷는다. 처음 찾아간 통영에서 헌책방을 찾다가 골목과 동산을 걷는다. 통영에 마지막까지 있던 헌책방은 조용히 사라진 듯하다. 헌책방이 있었으리라 보는 곳은 무언가 확 바뀌었다. 찻길이 넓고 아파트가 높다. 틀림없이 이 언저리일 텐데 하고 한참 뒤돌아보지만 몇 해 앞서 문을 닫고 말았네 싶은 헌책방은 내 눈앞에 없다.


  통영에도 이마트가 있다. 통영시는 작지 않다. 그렇지만, 책이 흐르는 물길 가운데 하나가 사라졌다. 통영에 헌책방이 없으면, 통영에서 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도서관에서 버리고, 이삿짐 사이에 섞여 나오는 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골목길을 걷는다. 시내에서 벗어나 자동차 소리에 귀가 아프지 않은 골목길을 걷는다. 큰길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깃들 뿐인데, 자동차 소리가 그치면서 새소리가 들린다. 아, 통영 골목동네에도 새가 있구나.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날고, 골목동네에는 직박구리와 딱새와 박새와 때까치가 있구나. 통영 골목동네에는 사월에 제비가 찾아오겠지? 통영 골목동네에서는 제비 노랫소리도 누릴 수 있겠지?


  조용한 골목동네를 걷다가 풀꽃을 만난다. 동백꽃 붉은 큰 나무 둘레에 앙증맞도록 조그맣고 귀여운 풀꽃이 방긋방긋 고개를 내밀며 바람에 흔들린다. 골목 한켠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코를 대고 봄풀내음과 봄꽃빛을 맡는다. 너희는 이곳에서 예쁜 골목사람 고운 손길을 받으면서 살겠지?


  통영에 있던 헌책방 〈개미서점〉을 만나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작은 풀꽃을 보면서 풀린다. 작은 헌책방은 역사책에 이름 넉 자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작은 풀꽃은 작은 골목동네를 이렇게 밝히는구나. 너희 푸른 숨결이 통영을 살린다.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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