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길을 떠나는 아침에

 


  3월 6일에 조촐하게 책잔치를 연다. 그 자리에 가려고 3월 5일 오늘 길을 먼저 나선다. 이튿날 아침에 길을 나서도 되는데, 아이들과 함께 큰아버지를 하루 먼저 만나서 놀도록 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나서는 길이니 더 느긋하게 만나면 좋겠지.


  혼자서 짐을 꾸린다. 아이들이 어제 먹고 남긴 밥을 어찌할까 하다가 개밥이나 고양이밥이 되라면서 마당 한쪽 그릇에 붓는다. 아이들 옷가지와 내 옷가지를 꾸리고, 아이들 책과 내 책을 꾸린다. 짐을 다 챙겼나 싶어 집을 나서려는데 그만 한 가지를 빠뜨렸다. 마실길에 글을 쓰려면 편집기 풀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메모리카드에 그만 안 옮겼다. 시계를 본다. 안 된다. 아침 아홉 시 십오 분 버스로 읍내에 나갈 수 없다. 아침에 못 나가면 서울로 가는 열 시 반 시외버스를 탈 수 없다.


  양말을 신고 섬돌에 나란히 앉아 노는 두 아이를 부른다. “얘들아, 밥 먹고 가자.” 먹을 밥은 개밥 또는 고양이밥으로 내놓았으니 없지만, 국수를 삶기로 한다. 국수를 삶아 아이들한테 내준 다음, 순천 버스역 정보를 살핀다. 낮 두 시에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가야겠다. 순천 기차역까지는 너무 빠듯해서 타기 어렵다.


  오늘 새벽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났으면 걱정없이 길을 나섰을까. 어젯밤에 짐을 미리 꾸렸으면 되었을까. 그러나 엊저녁까지 오늘 길을 나설지 하루 더 자고 길을 나설지 망설였다. 아침에도 오늘 갈는지 하루 더 자고 갈는지 망설였다. 망설였으니 짐을 제대로 꾸리지 못했고, 아침 군내버스를 놓쳤다.


  잘 가야지. 열한 시 십오 분에 나가는 군내버스까지 한 시간 남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고 문을 잘 닫은 뒤 나가자. 느긋하게 잘 가자.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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