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사진 찍기

 


  여권을 만들기로 한다. 여권사진을 찍는다. 읍내로 아이들을 데리고 마실을 간다. 딱히 읍내에 갈 일은 없으나 면소재지에서는 사진을 못 찍기도 하고, 면소재지에 사진관이 있더라도 군청까지 가야 하니 읍내마실을 한다.


  여권사진을 찍자니 넥타이를 매고 양복 웃도리를 걸쳐야 한단다. 법으로 이렇게 못박았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사람이면 치마저고리나 바지저고리 차림이어야 걸맞지 않을까? 집에 양복 한 벌 없는 사람을 헤아리는 사진관에는 양복 웃도리가 있다.


  여권사진을 찍는데 머리를 감고 갈까 말까 생각해 보다가, 머리 감을 겨를에 다른 일을 하자 생각하며 부스스한 채 나갔다. 내 사진이 아닌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 했다면 아이들을 씻기고 새옷 입히고 했을까. 머리도 안 감고 옷도 여느 때에 입던 차림 그대로 갔다. 여느 때처럼 맨발에 고무신을 꿰고 읍내마실을 나갔다. 시골사람이니까.


  아마 이달에 외국으로 취재여행을 가야 할 텐데, 그때에도 내 차림새는 맨발 고무신이 되리라 생각한다. 방송사에서 이 꼴을 보기 싫다면 양말과 가죽신을 협찬받아서 억지로 나한테 신길는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고무신을 가방에 챙겨서, 방송사 촬영기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슬그머니 양말과 가죽신을 벗고는 고무신을 꿰어야지. 취재여행이 끝나면? 글쎄, 나로서는 가죽신도 등산신도 운동신도 꿸 일이 없으니 어디 누구한테 주면 좋겠는데.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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