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들공주》와 《내가 진짜 공주님》

 


  일본사람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1995년에 일본에서 처음 선보인 그림책이 있다. 이 그림책에 붙은 이름은 《のはらひめ》이다. 지난 2001년에 한국말로 옮겨서 한국 어린이도 이 그림책을 볼 수 있으며, 한국책에는 《내가 진짜 공주님》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우리 집 아이들과 한국 ‘번역’책 《내가 진짜 공주님》을 읽으며, 수수하며 예쁜 넋이 잘 드러나는 그림책이라고 여겼다.


  한국말로 나온 ‘번역’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일본책으로 《のはらひめ》를 보고는 기쁜 나머지 냉큼 집어들었다. 일본책에 흐르는 결과 무늬를 헤아려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본책에 적힌 이름 ‘のはら’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のはら’는 ‘내가 진짜’가 아닐 텐데? ‘ひめ’는 ‘공주’를 뜻한다. 그러면 ‘のはら’는 무엇인가? 일본말사전을 살펴본다. 일본말 ‘のはら’는 ‘들’을 뜻한다고 한다. 무언가 뒷통수를 때리는 느낌이다. 일본책 간기를 살핀다. 일본책에는 영어로 “Princess of the Field”라는 말을 나란히 적는다. 한국책 간기를 들여다본다. 한국책 간기에는 “NOHARA Hime”라고 나온다.


  이런, “내가 진짜 공주님”도 아니요 “우리 집 공주님”도 아니잖은가? 한국 ‘번역’ 그림책을 보면, 이 그림책에서 고빗사위라 할 자리에서 주인공 가시내가 “우리집 공주님”이라고 글을 적는다. 공주 공부를 마치고 어떤 공주가 되고 싶냐고 물으니, 그림책 주인공 가시내는 씩씩하게 한 마디를 적는데, 한국 ‘번역’책에는 “우리집 공주님”이요, 일본 그림책에는 “のはらひめ”, 그러니까 “들공주”라고 적었다.


  일본 그림책에 나온 글을 죽 살펴본다. 아무래도 한국 그림책에 적힌 글하고 다르구나 싶다. 한국에서 이 그림책을 옮기면서 글 줄거리까지 바꾸었구나 싶다. 줄거리뿐 아니라 알맹이까지 바꾸었다. 그림책 주인공 가시내는 ‘들판에서 들내음 마시고 들꽃으로 꽃모자 만들어 쓰면서 노는 공주’가 되고 싶었구나. 다시 그림책을 들여다보니, 겉그림에도 온통 들꽃잔치이다. 겉그림에 나오는 가시내는 들꽃모자를 썼을 뿐 아니라, 치마 주머니에도 들꽃을 한 줌 넣었다. 이 아이는 “들공주”요 “들꽃공주”이다. “들빛공주”요 “풀빛공주”이며 “풀공주”이다.


  부아가 치민다. 일본사람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아이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아주 엉터리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제빛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빚은 다른 ‘번역’ 그림책으로 《작은 새가 좋아요》가 있다. 이 그림책을 보면,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숲·들·꽃·작은 숨결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다른 그림책 ‘번역’도 엉망진창으로 바꾸었을까?


  아름다운 그림책을 아름답게 번역하고 편집해서 우리 아이들한테 베풀 때에 비로소 아름답다. 아름다운 넋이 무엇인가를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멋대로 아무렇게나 뒤바꾸는 일은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울 수 없다. 아이들한테 ‘들꽃’을 이야기하려는 그림책 작가 넋을 송두리째 짓밟은 이 그림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내놓는 출판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을 애써 번역해 주어 무척 고맙지만, 이야기도 줄거리도 알맹이도 모두 뒤바뀌어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그림책을 빚은 나카가와 치히로 님한테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한테도 모두 잘못을 저지른 셈이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루 빨리 《내가 진짜 공주님》을 절판하고, 《들꽃 공주》나 《들공주》라고 이름을 똑바로 바로잡아서 제대로 우리 아이들한테 선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347.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함께)

 

 

 

 

 

 

 

 

 

 

 

 

 

 

 

+

 

표지를 가득 감싼 '풀꽃'을 보라.

이 표지 그림이 바로 이 그림책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안타깝지만,

이분 다른 '번역' 그림책도

'번역'을 믿을 수 없다.

아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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