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팽나무와 까치집

 


  나무도 임자나 사람을 잘못 만나면 죽는다. 사람도 사람을 잘못 만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거꾸로, 나무나 사람 모두 사람을 잘 만나면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없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한테는 꿈이 없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한테는 꿈이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은 착하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은 아름답다.


  아주 쉽기 때문에 잘 헤아리면 된다. 내가 이웃이나 동무로 사귈 만한 사람은, 마음속에서 사랑과 꿈이 샘솟는 사람이다. 내가 이웃이나 동무로 아낄 만한 사람은,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가슴속에 사랑과 꿈이 도사리는 사람이다.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반갑다. 착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안 반갑다.


  돈이 있기에 반가울 수 없다. 이름값이 높거나 힘이 세기에 반가울 수 없다. 얼굴이 이쁘장하기에 반가울 수 없다. 착한 넋과 아름다운 사랑이 어우러지면서 맑게 웃는 사람이 반갑다.


  겨울 팽나무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팽나무가 살아온 나날은 마을보다 훨씬 깊을 수 있고, 201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보다도 길다. 예전에는 팽나무 둘레에서 누가 살았을까. 오늘은 이 팽나무 둘레에서 누가 살아갈까. 팽나무는 팽나무 둘레에 깃든 집에서 살아가는 임자를 잘못 만나면 몹시 고달프리라. 팽나무는 팽나무 곁에 살림집 마련해서 살아가는 임자를 잘 만나면 쉰 해나 백 해뿐 아니라 이백 해나 오백 해를 어우르면서 천 해나 이천 해까지도 즐거우리라.


  팽나무 우듬지에 까치집이 있다. 저마다 임자를 잘 만나서 오순도순 얼크러진다. 여름에는 짙푸른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크고작은 가지가 어울리는 빛을 낱낱이 보여준다. 우람한 팽나무 곁에서 하늘숨을 마신다.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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