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34. 발자국이 예쁘다
눈이 오는 날에 발자국이 찍힙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일 적에 비로소 겨울 발자국놀이를 합니다. 눈밭을 지나간 작은 짐승도 발자국을 남기고, 먹이를 찾으며 마당에 사뿐사뿐 내려앉은 새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들고양이도 발자국을 남기며, 얼굴로 눈을 받아먹으며 노는 아이들도 발자국을 남깁니다.
뽀독뽀독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밟는 소리는 맑습니다. 바람이 살랑 불면서 눈발이 날리면 사락사락 눈이 천천히 쌓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잠들면서 눈송이가 굵어지면 스륵스륵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눈이 내리는 소리는 무척 낮습니다. 나즈막하면서 투박합니다. 먼 데서 별이 흐르는 소리와 같고, 봄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소리와 같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소리와 함께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가랑잎이 지는 소리를 가만히 그립니다. 감잎이 질 때와 후박잎이 질 때에는 소리가 다릅니다. 매화잎이 질 때와 모과잎이 질 때에도 소리가 다릅니다. 나뭇잎이 다른 만큼 잎이 떨어지면서 퍼지는 소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다 다른 소리를 알아챕니다. 마음을 열 수 있으면 다 다른 소리를 포근히 껴안습니다.
요즈막에는 도시 아이들이 자동차 소리를 다 가눈다고 해요. 회사마다 다른 자동차에 따라, 바퀴 구르는 소리가 다르다지요. 시골마을 우리 집 아이들도 군내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와 짐차 지나가는 소리가 다 다른 줄 알아챕니다. 자동차마다 소리가 다르듯 가랑잎 지는 소리가 다르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부는 바람이 내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가 달라요.
발자국 모양과 크기가 다르니 발걸음 소리가 다르겠지요. 눈밭에 남기는 발자국을 들여다보면서 이 발자국을 남기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일곱 살 아이 발자국은 일곱 살을 살아가는 아이다운 빛이 서려 예뻐요.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며 열 살이 되면, 그때에는 여덟 살과 아홉 살과 열 살이 되는 결에 따라 예쁜 빛이 서리겠지요.
기계 단추를 누르는 일이 사진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꾸리는 삶을 읽을 줄 아는 눈길이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공책에 연필로 적는다고 모두 글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저마다 일구는 삶을 읽을 줄 아는 마음씨가 글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을 실어 이야기를 지으니, 사진이 되고 글이 됩니다.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며 웃는 삶일 때에, 사진이 태어나고 글이 태어납니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