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33. 손빛을 살며시

 


  얇고 동그랗게 썬 무 한 조각을 한손에 들고는 소매를 척척 걷어붙인 매무새로 그림을 그리며 노는 일곱 살 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림을 그리는 손놀림이 얼마나 야무진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가끔 아이한테 물어 봅니다. “이 예쁜 아이야, 너는 어디에서 왔니?” 너도 이 지구별 사람이니? 아니면 다른 머나먼 별에서 지구별에 따숩고 살가운 사랑을 나누어 주려고 찾아온 사람이니?


  사진가 가운데 ‘일하는 사람’ 손을 사진으로 꾸준히 찍는 분들이 있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손을 사진에 담으면서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빛을 선보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갓난쟁이 손을 어른 손과 맞잡도록 하며 사진을 찍어, 사람들 삶이 흐르는 빛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가 이녁 아이를 스무 해쯤 꾸준히 찍어, 갓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어떤 모습인가를 알뜰살뜰 그러모으곤 합니다. 이때에 흔히 얼굴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몸빛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런데, 손빛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좀 드물지 싶어요. 조그마한 손에서 차츰 커지는 손으로 달라지는 흐름을 찍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어요. 손과 함께 발을 차근차근 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꼭 어떤 대단한 작품을 만들자는 뜻으로 찍는 손빛이 되기보다는, 한 사람이 사랑을 받아 살아가는 결을 손빛에 실어서 보여준다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둘레 사람들 손은 둘레 사람들 손대로, 내 손은 내 손대로, 여기에 아이들 손은 아이들 손대로 꾸준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지고 토닥이면서 사진 한 장으로 담아요.


  그림을 그리는 손빛을 담습니다. 밥을 먹는 손빛을 담습니다. 춤을 추는 손빛을 담습니다. 책을 쥔 손빛을 담습니다. 호미를 잡고 땅을 쪼는 손빛을 담습니다. 한겨울에 흙놀이를 하거나 눈놀이를 하는 손빛을 담습니다.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손빛을 담습니다. 나무를 쓰다듬고 조그마한 꽃송이를 아끼는 손빛을 담습니다.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가서 품에 꼬옥 안기는 손빛을 담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는 손빛을 담습니다. 혼자서 가방을 척 메고는 들마실 하는 손빛을 담습니다.


  얼마나 많은 손빛이 있는가 헤아립니다. 얼마나 깊고 너른 손빛이 그득한가 돌아봅니다. 내가 살아가는 손빛을 오늘부터 스무 해 동안 찍을 적에도 예쁜 이야기가 새삼스레 태어납니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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