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만 추천해 주셔요
‘한 권만 추천한다면?’ 같은 말을 들을 적에 언제나 알쏭달쏭하다. 온누리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 권만 추천하라는 말인가 하고도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추천책 한 권’만 읽고 더는 책을 안 읽으려 한다는 냄새가 풍겨서 쓸쓸하다. 책을 추천해 달라고 말하려면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모두 다 추천해 주셔요.’ 하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책을 읽으려 하고, 궁금한 것투성이인만큼 책을 알려 달라는 뜻 아니겠는가.
어느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사진을 잘 알 수 없다. 어느 책 한 권을 읽었으니 인문학 소양을 알차게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어느 책 한 권을 읽었기에 만화를 잘 알거나 배웠다고 할 수 없다. 어느 책 한 권을 읽은 만큼 이제 끝이라 할 수 없다. 모든 ‘추천책 한 권’은 첫걸음일 뿐이다. 첫걸음으로 들어서는 책이기에, 이 책을 발판으로 스스로 다른 책을 꾸준히 눈여겨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책들을 차근차근 추천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우지 않고는 알 수 없으니까. 배우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으니까. 배우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고, 배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아주 쉬운 이야기이다. 배우지 않았으면 알 수 없다.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배우지’ 않고서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배우지’ 않고서 함께 살아가며 사랑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무엇을 하며 놀고 싶은가를 아이한테서 ‘배우지’ 않고서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가?
배우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살아도 살아간다고 하기 어렵다. 먹을 수 있는 풀을 배우면서 풀밥을 맛나게 누린다. 밥차림과 밥하기를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날마다 똑같은 밥과 국과 반찬을 올리더’라고 날마다 새롭게 맛난 끼니를 나눈다.
새롭게 배우기에 새롭게 글을 쓴다. 새롭게 배우기에 새롭게 강의도 하고 책도 엮을 수 있겠지.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새로운 책을 찾아서 기쁘게 읽는다.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다르게 부는 바람을 살갗으로 느낀다.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철마다 달리 내리쬐는 햇볕을 가만히 느낀다.
‘한 권만 추천한다면?’ 하고 묻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가장 아름다운 책을 추천하라는 뜻일까. 그러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책에 순위를 매겨서 1등 2등 3등으로 가른 뒤 1등만 말하면 ‘사람들이 1등이 될 책만 읽으면 된다’고 해도 될까.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아예 어느 책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 빙그레 웃으면서 저기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서 하늘을 보고 풀을 보며 숲으로 달려 보라고 말할 생각이다. 숲 한복판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새와 벌레가 빚는 노래잔치를 누리라고 말하려 한다. 꼭 한 권만 바란다면, 숲책을 읽고 숲빛을 읽으며 숲꿈을 사랑스레 돌보면 된다고 말하려 한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