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여행하는 책

 


  두 아이를 데리고 기차여행을 한다. 설날을 맞이해 고흥에서 음성으로 가는 길이란 기차여행이다. 먼저 고흥 읍내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20분 달린다. 고흥읍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시외버스로 한 시간 달린다. 순천 버스역에서 순천 기차역까지 30분 걷는다. 기차를 기다리며 한 시간 즈음 기차역 언저리에서 뛰논다. 기차를 타고 네 시간 가까이 달려 조치원역에 닿는다. 조치원역에서 한 시간 즈음 다시 기차를 달려 음성역까지 간다.


  작은아이는 순천을 떠난 기차가 전주를 지날 즈음 앙탈을 부리다가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졸린 눈빛이지만 졸음을 참고 “언제까지 가? 할머니 집 멀었어?” 하고 스무 차례 넘게 묻는다. 조치원역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탄 뒤, 서서 가는 할매가 보여 내 자리를 내준다. 할매더러 앉아서 가시라고 이야기한다. 할매는 일부러 값싼 표를 끊으셨을 수 있다.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자리를 내주는 셈인가 하고 살짝 생각해 보는데, 두 녀석이 저희끼리 잘 노니, 내 자리를 할매한테 내주어도 되겠다고 느낀다.


  할매는 고맙다고 자리에 앉는다. 다리가 무척 아프시겠지. 큰아이는 걸상 아닌 바닥턱에 앉는다. 아마 그 자리가 더 재미있으리라. 나도 큰아이 나이만 하던 지난날에 기차에서 저 바닥턱에 앉으며 놀지 않았을까.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라고 꾸중하셨는데, 그래도 저 바닥턱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바닥턱에 앉아 동생하고 놀던 큰아이가 천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낸다. “책 읽어야지. 보라야, 누나가 책 읽어 줄게.” 하면서 그림책을 종알종알 읽는다. 이번 기차여행길에는 그만 《도라에몽》 만화책을 못 챙겼다. 깜빡 잊었다. 그러나 그림책은 두 권 챙겼으니, 이 그림책 두 권으로 잘 놀자꾸나. 큰아이는 예쁜 그림을 예쁜 말씨로 읽어 준다. 내 자리에 앉아서 가는 할매도 일곱 살 큰아이가 읽는 그림책을 함께 들여다본다. “아기가 어찌 그리 잘 읽누? 유치원 다니나?” “아니요. 안 다녀요.” 일곱 살 아이와 일흔 훌쩍 넘은 듯한 할매는 이야기도 잘 나눈다. 놀고 책을 읽고 까르르 웃는 사이 어느새 음성역에 닿는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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