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랑 네컷 만화
이랑 지음 / 유어마인드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8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화로
― 이랑 네컷 만화
이랑 글·그림
유어마인드 펴냄, 2013.11.15.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즐겁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즐겁지 못합니다. 참말, 그렇지요. 돈이 있기에 즐겁지 않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 하기에 즐겁습니다. 이름을 널리 떨쳤으니 즐겁지 않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는 마음일 적에 즐겁습니다.
책을 한 권 썼는데 많이 팔아야 즐겁지 않습니다. 책을 즐겁게 썼으면 즐겁고, 즐겁게 쓴 책을 이웃들한테 즐겁게 읽히면 즐겁습니다. 노래를 한 가락 부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들어야 즐겁지 않아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 마음이 즐거우면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한테 즐겁게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비로소 즐겁습니다.
- “이랑 감독, 만화책 그리고 있다며?” “네.” “점점 여자들이 싫어하는 아이콘이 되어 가네. 음악에 영화에 만화에.” “헐.” “그것만 잘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나갈 수 있겠네.” “헐.” “자, 회의 시작하죠.” (96쪽)
즐거움은 스스로 빚습니다. 즐거움은 내 마음속에서 샘솟습니다. 남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즐겁게 합니다. 내가 차려서 먹는 밥이 내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내 입으로 읊는 노래가 내 귀와 넋을 즐겁게 합니다. 내가 손을 뻗어 아이들 볼을 부비고 몸을 번쩍 들어 품에 따사롭게 안을 적에 즐겁습니다. 남들더러 안아 주라고 해야 즐겁지 않습니다. 아이를 남더러 돌봐 달라고 맡겨야 즐겁지 않습니다.
나무는 스스로 푸릅니다. 나무는 스스로 푸르고 싶기에 푸른 잎사귀를 내놓아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웁니다. 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구기도 합니다. 겨울이 되어도 짙푸른 잎사귀를 그대로 매달기도 합니다. 나무는 저마다 꽃을 곱게 피웁니다. 푸른 잎사귀와 똑같은 빛깔로 꽃을 피우기도 하고, 잎사귀와는 달리 발갛거나 노랗거나 하얀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나무는 스스로 곱게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구어요. 스스로 즐겁게 자라면서 우리들한테 맑은 바람을 베풉니다.
새들도 이와 같아요. 새들은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풀벌레도 이와 같아요. 풀벌레도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개구리도 맹꽁이도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불러요.
- “오, 오, 오. 드디어! 이창동 선생님께 (1집 앨범) 드릴 수 있겠어!” … “선생님 이거 제 앨범. 버리지 마시고 꼭 들어 주세요.” “그래 축하한다.” “‘졸업영화제’라는 곡에 선생님 이름도 나와요. 헤헤.” “허허 그런 짓을 왜 했니.” (118쪽)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찍는 이랑 님이 만화도 그리면서 선보인 《이랑 네컷 만화》(유어마인드,2013)를 읽습니다. 이랑 님은 그저 스스로 즐겁고 싶기에 노래와 영화에 이어 만화를 즐깁니다. 노래는 다른 사람이 듣고, 영화는 다른 사람이 봐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듣기 앞서 스스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이 보기 앞서 스스로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보고 즐기는 영화입니다.
사랑을 담아 부르는 노래일 적에,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사랑을 누립니다. 꿈을 실어 찍은 영화일 적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꿈을 누려요.
값진 요리를 차린 밥상이라서 더 맛있지 않습니다. 값지지 않더라도 따사롭게 사랑을 담아 차린 밥상이면 맛있어요. 값비싼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라서 더 멋있지 않습니다. 값비싼 사진기가 아니더라도 사랑을 고이 담아서 찍은 사진이면 멋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사랑스럽지요.
대단한 그림 솜씨를 뽐내어 그리는 만화여야 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그림 재주를 부려서 그리는 만화여야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을 때에 만화입니다. 이야기를 선보일 때에 영화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노래입니다.
- “오빠.” “응.” “내가 음악도 안 하고 영화도 안 하고 그림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아할 거야?” “응, 근데 안 할 수 있을까?” “안 할 수 있지. 안 하고 싶으면!” “그래?” “나 주부도 하고 싶은데, 나 청소 좋아하니까. 음식물쓰레기는 빼고.” “응응, 주부도 좋아.” (128쪽)
알베르 라모리스 님이 찍은 영화 〈빨강 풍선〉이란, 페데리코 펠리니 님이 찍은 영화 〈길〉이란, 우리한테 무엇이라 할 만할까요. 멋진 영화요 대단한 영화일까요. 사랑스러운 영화요 아름다운 영화일까요.
이진주 님이 그린 〈하니〉나 김수정 님이 그린 〈둘리〉는 어떤 만화일까요. 이 만화는 우리한테 무엇이 될까요. 어떤 넋으로 그린 만화요, 어떤 꿈과 사랑이 깃든 만화일까요. 아이들이 이 만화를 좋아하는 까닭이란,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아이를 낳은 뒤에도 〈하니〉와 〈둘리〉를 한결같이 사랑하는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이랑 님 첫 만화책 《이랑 네컷 만화》란 이랑 님이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오며 누린 즐거움과 사랑과 꿈을 담은 이야기책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막 첫 만화책을 내놓은 만큼, 앞으로도 이랑 님 즐거움과 사랑과 꿈을 차근차근 이어서 예쁘게 선보일 수 있기를 빕니다. 남한테 보여준다거나 누구한테 드러내려는 만화가 아닌, 언제나 스스로 곱게 웃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멋진 작품이 되거나 대단한 상을 받을 작품이 아닌,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시나브로 그릴 수 있는 삶빛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