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29. 고운 빛깔을 그린다

 


  고운 빛깔을 그릴 때에 사진이 됩니다. 고운 빛깔을 그리지 못한다면? 사진이 안 됩니다. 그러면 ‘고운 빛깔’은 무엇일까요? 보기 좋은 빛깔일까요? 그럴듯한 빛깔일까요? 예쁘장한 빛깔일까요?


  고운 빛깔은 보기 좋은 빛깔이 아닙니다. 보기 좋은 빛깔이란, 말 그대로 ‘보기 좋은 빛깔’입니다. 그럴듯한 빛깔이란, 참말 말 그대로 ‘그럴듯한 빛깔’이에요. 예쁘장한 빛깔이란, 두말 할 나위 없이 ‘예쁘장한 빛깔’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고운 빛깔을 그릴 때에 사진이 됩니다. 고운 빛깔을 마음에 담고, 고운 빛깔로 바라볼 줄 아는 한편, 고운 빛깔이 드리우도록 사진기를 만져서, 고운 빛깔을 이웃과 나누려는 사랑이 깃들도록 하면, 어느새 사진이 됩니다. 아주 쉽습니다.


  알록달록할 때에 고운 빛깔이 되지 않습니다만, 알록달록하면서 고운 빛깔이 될 수 있습니다. 예쁘장할 때에 고운 빛깔이 되지 않습니다만, 예쁘장하면서 고운 빛깔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맨 먼저 마음을 잘 다스리셔요. 서두르지 말아요. 재촉하지 말아요. 채근하지 말아요. 무턱대고 부딪히려고 하지 말아요. 늦추지 말아요. 일부러 천천히 가지 말아요.


  배고프면 밥을 차려서 먹습니다. 배고프니 밥을 차려서 먹어요. 배가 안 고프면? 따로 밥을 차려서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아요. 무엇을 모르겠다고 하면 배웁니다. 모르니 배워요. 책을 읽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누구한테 말씀을 여쭈어 배웁니다. 모르지 않다면? 모르지 않다면 배울 일이 없겠지요.


  사진을 찍으려면, 무엇보다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곱게 밝히는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이 밥을 안 차리고 안 먹듯이, 모르지 않는 사람이 배울 마음이 없듯이, 차근차근 샘솟는 이야기가 있지 않고서야 사진을 못 찍거나 안 찍습니다.


  기념사진을 왜 찍겠습니까. 식구들 모여서 사진 한 장 남기려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왜 솔솔 피어날까요. 뭉클뭉클 가슴을 움직이면서 고운 빛깔이 깨어나기 때문이에요. 이 즐거움과, 이 아름다움과, 이 사랑스러움과, 이 놀라움과, 이 웃음과, 이 기쁨과, 이 이야기를 모두 찬찬히 사진으로 옮기고 싶으니 사진을 찍습니다.


  밥을 차리는 사람한테 냄비나 주걱이나 불판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밥그릇에 담아도 맛나게 차릴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 대학교 이름이나 글쓴이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든 초등학교에 가든 어느 책을 골라서 읽든, 배우려는 마음이라면 무엇이든 즐겁게 알뜰살뜰 배웁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사진기 회사가 대수롭지 않고,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을 적에 사진기가 있으면 되고, 사진기를 스스로 즐겁게 다루면서 찍으면 넉넉해요. 완전수동으로 맞추든 반자동으로 맞추든 자동으로 맞추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즐겁게 찍을 때에 즐거운 사진 태어나고, 노래하며 찍을 때에 노래가 샘솟는 사진이 태어나며, 사랑하는 넋으로 찍을 때에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요. 그러니까, 고운 빛깔을 그릴 때에 사진이 됩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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