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소년학급단 2
후지무라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4

 


하고 싶은 대로
― 소년소녀학급단 2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0.25.

 


  비파나무를 아는 이는 비파나무 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한겨울에도 푸른 잎 쪼글쪼글 매단 비파나무 옆을 지나가다고 우뚝 멈춥니다. 찬바람을 씩씩하게 맞이하는 비파잎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비자나무를 아는 이는 비자나무 숲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숲내음을 듬뿍 들이켜고, 푸른빛을 그득 마십니다. 아름드리나무를 가만히 껴안습니다. 열매가 툭툭 떨어져 천천히 뿌리를 내린 어린나무를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 가볍습니다.


- 별 거 아닌 일도 금세 소문이 퍼지는 연애초보자 아이들. (11쪽)
- “난 중학교 졸업하면 일할 거거든.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아서 그럴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동안 공부도, 야구도 열심히 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 보려고.” (14쪽)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선보이는 나무는 겨울 추위가 제법 드센 날에는 잎사귀를 돌돌 맙니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천천히 동이 트면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면, 돌돌 말던 잎을 살며시 풀어 햇볕을 즐겁게 먹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아침볕이 마루로 스미면 빙그레 웃으면서 깔깔 노래합니다.


  달빛이 환한 밤에 포근히 잠듭니다. 햇빛이 환한 낮에 콩콩 뛰면서 일하고 놉니다. 별빛이 드리운 밤에 조용조용 쉽니다. 하늘이 파랗고 멧새가 지저귀는 낮에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일하고 놉니다.


  어느 나무라도 좋으니, 나무 곁에 서서 겨울맞이를 해 보셔요.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벌거숭이이지 않습니다. 가지마다 새눈이 촘촘히 돋습니다. 나뭇가지를 잘 살피면, 나무와 함께 겨울을 나는 작은 벌레들 겨울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를 보면, 잎사귀 갉아먹힌 자국을 겨울에도 봅니다. 이 겨울에 어떤 녀석이 후박잎을 갉아먹나 하고 찬찬히 살피니, 범나비 애벌레가 실컷 잎을 갉아먹은 뒤 고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 처마 밑 빈 제비집에 딱새 두 마리 깃들며 아침저녁으로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서 놀던데, 넌 용케 딱새한테 안 잡히고 살아남아 고치까지 틀었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마자 날개를 펼치려고 이렇게 고치를 틀었니.

 


- “그건 말이지, 정말, 정말, 저엉말, 정말 정말 좋아하니까 하는 거야.” (24∼25쪽)
- ‘켄 오빠는 어떨까. 오빠한테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29쪽)


  겨울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들길을 지나갑니다. 나락을 벤 빈 들판인 곳이 있습니다. 나락을 베고 나서 바로 마늘을 심은 곳이 있습니다. 나락을 벤 빈 들에 유채씨를 뿌린 곳이 있습니다.


  마늘싹은 십이월부터 나왔고, 마늘잎은 퍽 자랐습니다. 유채씨를 잘 뿌리고 골을 잘 낸 들에는 유채잎이 푸릇푸릇 잘 돋았습니다. 유채씨를 엉성하게 뿌리고 골을 제대로 안 낸 들은 찬바람 몰아칠 적마다 물이 얼어붙습니다. 씨앗도 몽땅 얼어죽게 생겼습니다. 우리 마을은 올해에도 ‘경관사업’을 한다는데, 이래서야 새봄에 노란물결 일렁이기는 힘들겠다 싶습니다.


  곧 봄이 오면, 유채꽃 노랗게 피는 논이 있을 테고, 유채꽃이 못 피는 논에서는 다른 풀꽃이 피겠지요. 유채씨가 이 겨울에 얼어죽는다 하더라도, 별꽃나물이나 냉이나 씀바귀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나 질경이 씨앗은 얼어죽지 않아요. 갓씨도 모시씨도 얼어죽지 않습니다. 온갖 풀이 논마다 논둑마다 골고루 돋아요.

 


- “설마, 너, 일부러.” “하루카를 상처 입히는 녀석은 내가 가만 안 둬.” (119쪽)
- 너무 어려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두 사람이었습니다. (139쪽)
- “오빠, 나 빨리 어른 될게.” “안 돼. 서두를 필요 없어.” (177쪽)


  관청에서는 오직 유채 한 가지만 놓고 경관사업을 합니다. 참 재미없습니다. 자운영으로도 경관사업을 하면 재미있을 텐데요. 현호색으로도 경관사업을 하면 멋있을 텐데요. 노랗고 빨갛고 파란 들을 선보일 수 있어요. 자주코딱지나물 씨앗을 뿌려 자주빛 흐드러지게 할 수 있어요. 돌나물 씨앗 깃들게 해서 돌나물꽃 새삼스레 노란물결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경관사업이라 하지 않아도, 빈들에서 자라는 온갖 들꽃이 아름답습니다. 경관사업을 따로 한다며 돈을 쓰는 까닭은, 들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들꽃을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냉이꽃잔치 벌어지는 빈들도 예뻐요. 부들꽃이 피는 들이나 늪도 예뻐요. 억새밭은 얼마나 예쁜가요. 따로 씨앗을 돈을 들여 사들인 뒤 잔뜩 뿌려야 예쁘지 않습니다. 풀씨가 스스로 날리고 뿌리내리면서 이루는 들과 숲은 모두 예쁩니다.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머금으며 자라는 모든 풀은 저마다 예뻐요.

 


- “홧김에 한 말이지. 와타루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네가 있기 때문이잖아. 네가 나가면 무슨 의미야.” “넌 같은 팀 멤버한네서 나가란 말 들어 본 적 있어?” “없긴, 한데.” (147쪽)
- “하루카, 같이 리틀에서 야구하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로 가고! 그래서 같이 야구부 들어가서 코시엔에 가자! 여자는 안 된다는 말, 절대 안 나오게 할 거야.” (154쪽)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학산문화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서로 다투고 아끼고 어울리고 복닥이는 삶을 보여주는 이 조그마한 만화책에 나오는 조그마한 아이들은 저마다 예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들꽃처럼 푸르고 맑으며 사랑스럽습니다.


  들꽃은 스스로 피어나고 싶은 곳까지 씨앗을 날려 자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놀이와 일을 하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을 수 있고, 야구를 하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 수 있고, 마냥 뛰놀고 싶을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틀을 지우지 말아요. 아이들한테 껍데기를 씌우지 말아요. 아이들을 이리 내몰거나 저리 몰아세우지 말아요. 신나게 땀흘리고 뛰놀며 자라다가 스스로 삶빛을 깨우쳐 즐겁게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요. 그러면 돼요. 꽃은 사람이 심어야 꽃이 되지 않습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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