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룬파 유치원 내 친구는 그림책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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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1

 


그냥 다 좋아
― 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1997.8.1.

 


  무엇을 하면서 놀면 즐거울까요?


  누군가 무엇을 하며 놀겠어요 하고 묻는다면 “음, 그냥 놀게요.” 하고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너희 무얼 하며 놀겠니?” 하고 물을 적에 “그냥 놀아요.” 하고 말했지 싶어요. 딱지를 꼭 쳐야 더 재미있지 않아요. 오징어놀이를 해야 더 신나지 않아요. 공놀이를 하든 공차기를 꼭 해야 하지 않아요. 땅따먹기나 돌치기나 구슬치기나 자치기를 굳이 해야 하지 않아요.


  골마루를 달리거나 운동장을 달리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집부터 학교까지 한 차례도 안 쉬고 달음박질을 해도 즐겁습니다. 학교부터 동무네 집까지 숨이 차도록 달려가도 놀이가 됩니다. 조약돌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하루 내내 만지작거리기만 해도 놀이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무엇이든 놀이이기 때문에 ‘무엇을 따로 하면서 논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 “구룬파는 다 컸는데도 늘 빈둥빈둥거려요.” 친구 코끼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훌쩍훌쩍 울어.” “그럼, 일을 하게 내보내자.” “그래, 그래.” ..  (4쪽)

 


  놀자고 하면 놀 뿐입니다. 꼭 무엇을 하면서 놀지 않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 이것은 이 놀이가 되고 저것은 저 놀이가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도 놀이입니다.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으로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도 놀이입니다. 눈알을 빙글빙글 돌려도 놀이입니다. 무언가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놀이요, 벽종이 무늬를 따라 눈알을 움직여도 놀이입니다. 가만히 앉을 적에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먼지 꽁무니를 좇아도 놀이입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물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아닌 물방울을 읽어도 놀이입니다. 바가지에 푼 쌀을 씻으면서 쌀알을 손끝으로 느낄 적에도 놀이입니다. 걸레를 쥐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슥슥 먼지를 훔쳐도 놀이입니다.


  빨래를 널며 기지개를 켜는 놀이입니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쳐다보는 놀이입니다. 자전거로 달려도 놀이요, 두 다리로 걸어도 놀이예요.


  참말 온누리 모든 삶은 놀이예요. 언제 어디에서나 놀이예요. 누구하고라도 놀이입니다. 어른들이 노래방에 가거나 찻집에 가거나 술집에 가야 놀이가 되지 않아요. 골목을 걸어도 놀이요, 밭에서 풀을 뽑아도 놀이입니다. 쑥을 뜯고 봄딸기를 훑어도 놀이입니다. 개구리 노랫소리 듣는 놀이입니다. 제비 날갯짓 구경하는 놀이입니다. 무지개를 찾아 소나기를 맞으며 이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놀이입니다.


.. 구룬파는 있는 힘을 다해서 피아노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커다란 피아노는 웬만큼 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누구도 칠 수 없습니다. 피 아저씨는 “구룬파야, 이제 피아노 만드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  (17쪽)

 


  니시우치 미나미 님이 글을 쓰고 호리우치 세이치 님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구룬파 유치원》(한림출판사,1997)을 읽습니다. 일곱 살 큰아이를 옆에 앉히고 함께 읽습니다. 나는 책에 적힌 글을 읽어 주지만, 아이는 책에 적힌 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만 들여다봅니다. 그림을 보며 왜 이래 왜 그래 하고 묻습니다.


  그래요, 글을 아는 어른은 글을 먼저 읽으려 할 테지만, 글을 모르는 아이라면, 또 글을 알더라도 여느 아이라면 그림으로 그림책을 읽으려 하겠지요.


  구룬파는 혼자 똑 떨어져 외로운 코끼리예요. 곁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습니다. 틀림없이 어미 코끼리가 사랑을 속삭이며 낳았으니 구룬파가 태어났어요. 그러나, 구룬파한테는 구룬파 몸을 씻기거나 보살피는 어버이나 어른이 없어요. 동무들도 구룬파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구룬파는 외롭게 지내다가 마을을 떠납니다. 구룬파는 코끼리 마을을 떠나 사람들 사는 마을로 가서 일자리를 얻습니다. 구룬파는 늘 있는 힘껏 일합니다. 아마 구룬파라는 ‘아이 코끼리’는 이런 날을 기다렸는지 몰라요. 누구한테라도 도움이 되고 빛이 되며 사랑이 될 수 있기를 꿈꾸었지 싶어요. 온힘을 쏟아 과자를 굽고 접시를 빚으며 자동차까지 만들어요. 그러나, 구룬파가 흘리는 땀방울을 알뜰히 돌아보는 사람이 없어요.


  구룬파는 다시 외롭습니다. 기운이 없습니다. 풀이 죽어요. 쓸쓸하게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길을 나서요. 외톨이 되어 조용히 길을 가요.

 


.. 한참 가자 아이가 12명이나 있는 엄마가 “아, 바쁘다, 바빠. 셔츠가 12장에 반바지도 12장, 앞치마가 12장, 양말을 24짝. 바쁘다, 바빠.” 하며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구룬파를 보자 “미안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놀아 주겠니?” 하고 부탁했습니다 ..  (22쪽)


  코끼리 구룬파는 열두 아이를 혼자 돌보는 아줌마를 만납니다. 열두 아이를 혼자 돌보는 아줌마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구룬파를 보더니 반깁니다. 아이들과 놀아 주기를 바랍니다. 이동안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고 집일을 하고 밥을 차리려 했겠지요. 구룬파는 피아노를 칩니다. 구룬파는 제 과자를 아이들한테 나누어 줍니다. 구룬파는 저처럼 외톨이인 아이들을 모두 부릅니다. 구룬파는 어느새 ‘유치원을 열어 모든 아이들하고 동무가 되어 신나게 어울리고 놀면서 하루를 누리는 빛’이 되었습니다.


  외톨이였던 아이들은 이제 더 외톨이가 아닙니다. 외톨이였던 구룬파는 이제 더 외톨이가 아닙니다. 서로 빙긋빙긋 웃습니다. 서로 깔깔 호호 하하 웃으면서 뛰놉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먹을것을 함께 나눕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함께 놉니다. ‘구룬파 유치원’은 허물도 담도 없습니다. 사랑 하나로 어우러지는 놀이터요, 꿈 하나로 함께 어깨동무하는 삶터입니다.


  그냥 웃습니다. 그냥 놉니다. 그냥 사랑합니다. 그냥 꿈을 꾸고, 그냥 손을 맞잡으면서 스스럼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하루하루 모두 아름답습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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