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미 고르기
지난 구월에 집안에 들인 누런쌀에서 바구미가 나온다. 다른 쌀에서는 바구미가 나오지 않는데, 이 누런쌀에서만 바구미가 나온다. 다른 쌀을 섞어서 불리기 앞서 바구미부터 고른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찍어서 개수대에 톡톡 턴다. 이 바구미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이 누런쌀 틈바구니에서 깨어났을까.
어릴 적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며 바구미 고르기를 으레 했다. 어릴 적에 툭하면 바구미를 고르면서 ‘바구미 고르지 않는 쌀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바구미 깃든 쌀푸대 주둥이를 열어서 바람을 쏘여 놓곤 했는데, 바구미가 볼볼 기어나와서 마룻바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바구미를 고르며 예나 이제나 생각한다. 바구미 먹는 쌀은 농약을 덜 친 쌀일까? 바구미가 깃들 만큼 농약은 적게 남거나 없다고 여겨도 될까?
바구미 있대서 농약을 적게 치거나 안 쳤을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어릴 적이나 요즈음이나 바구미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잡은 다음 개수대에 톡톡 털며 생각한다.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 손끝에 붙잡히는 아주 작은 바구미인데, 이 작은 바구미와 개미를 나란히 놓으면 어느 벌레가 더 튼튼하거나 셀까? 손끝으로 누를 적마다 퍽 단단하며 야무진 벌레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고작 쌀속을 파먹으면서 이렇게 단단하며 야무진 껍데기와 다리를 내놓으며 살아간다니, 참 대단하구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바구미들아, 너희는 쌀푸대 말고 풀숲으로 가서 너희 삶을 너희 깜냥껏 누리기를 빈다.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