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을 타면 놓치는 책

 


  자가용을 타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수많은 빛과 바람을 모두 놓치고 말아요. 무엇보다 ‘아무런 책도 못 읽고’ 말아요. 굳이 자가용을 탈 까닭이 없어요. 자가용을 몰아 보셔요. 두 손은 손잡이를 잡아야지, 책을 손에 쥐지 못해요. 자가용 모는 이 옆에 앉아 보셔요. 혼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먼길을 달릴 적에는 자가용 모는 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또 졸지 않도록, 두런두런 말을 걸어 주어야 해요. 그러니, 자가용 모는 이뿐 아니라 자가용 타는 이까지 책을 읽지 못해요.


  자가용을 타면, 종이책뿐 아니라 삶책 또한 못 읽어요. 다른 자동차를 살펴야 하고, 길알림판 찾아야 하며, 이래저래 앞만 한참 쳐다보아야 해요. 자동차를 모는 이와 자동차를 함께 탄 이 모두 둘레를 살피지 못해요. 게다가, 자동차 소리만 들어야 할 뿐, 자동차가 지나가는 마을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퍼지는 수많은 소리는 하나도 못 들어요. 봄에 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맡아요. 가을에 가을내음을 자동차에서 못 느껴요.


  자가용에서 내려야 비로소 봄빛과 가을빛을 온몸으로 누려요.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비로소 종이책과 삶책 모두 가슴으로 안을 수 있어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도 좋지만, 들과 나무와 숲과 바다와 하늘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여 봐요. 기계가 들려주는 노래는 살그마니 내려놓고, 우리 목소리를 가다듬어 스스로 예쁘게 노래를 불러 봐요. 내 이야기를 동무한테 들려주고, 동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요.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맡고, 나무 곁에 서서 나무를 포옥 안으며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요.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는 책을 읽어요. 늘 우리 곁에서 따사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수많은 책을 사랑스레 누려요. 4347.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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