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책이 있다

 


  여기에 책이 있는데 어디를 보니? 코앞에 있는 책은 왜 안 쳐다보고 자꾸 저 먼 데만 바라보니? 네 앞에 있는 책부터 보렴. 네 앞에 있는 책을 살뜰히 볼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저 먼 데에 있는 책을 알아볼 수 있어. 네 발밑에서 자라는 풀을 알고 느끼며 뜯어서 먹을 줄 알 때에, 비로소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수 있어.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때에 바야흐로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이 얼마나 상큼하고 푸르며 싱그러운가를 알 수 있어.


  책은 여기에 있어. 책은 바로 네 가슴에, 네 마음속에, 네 눈빛에, 네 온몸에 있어. 스스로 빛이 되어야 책을 읽지. 스스로 빛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책을 읽겠니.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하면 어떤 책을 손에 쥐더라도 사랑과 꿈을 읽어내지 못해. 스스로 빛이 될 적에는 어떤 책을 손에 쥐어도 사랑과 꿈을 깨달으면서 맞아들이지.


  훌륭하다는 책을 내 손에 쥔다 한들 읽을 수 없어. 스스로 훌륭해야 비로소 훌륭한 책을 알아보면서 받아들여. 스스로 사랑스러워야 비로소 사랑스러운 책에서 흐르는 사랑빛을 알아채고는 받아먹어.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은 온 사랑으로 읽을 때에 어깨동무를 하지.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을 줄거리훑기만 하거나 대학입시교재로 삼아서 들여다보면 무엇을 얻을까. 내가 바로 책이고, 풀 한 포기가 바로 책이요, 바람 한 줄기가 바로 책이야. 책은 바로 여기에 있어.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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