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나무 책읽기

 


  고흥 읍내 봉황다리 곁에는 우람한 멀구슬나무 몇 그루 있었다. 고흥 읍내로 마실을 올 적마다 멀구슬나무를 보는 즐거움이 사뭇 컸다. 그런데 이 나무이름을 아는 사람이 둘레에 없어서 지난 몇 해 동안 ‘겨울에 동글동글 노란 열매 줄줄이 달려 마치 노란 등불 켠 듯 환한 나무’라고만 여겼다.


  올 2013년 봄, 고흥 읍내 멀구슬나무가 갑자기 사라졌다. 고흥군청에서 공용주차장을 넓힌다면서, 우람한 멀구슬나무를 모조리 베었다. 그러고는 시멘트로 냇가를 퍼붓고 다져서 여러 달만에 주차장을 지었다. 주차장으로 바뀐 그곳이 멀구슬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서 여름에는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에는 노란 열매빛으로 눈을 즐겁게 하던 자리인 줄 아는 고흥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흥군은 2013년 봄에 고흥 읍내에 있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를 함부로 가지치기를 했다. 가지가 빽빽하고 잎사귀도 빼곡하던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가 하루아침에 민둥민둥 이 빠진 나무가 되어 버렸다. 나무를 제대로 건사하거나 돌볼 줄 모르는 공무원 행정인 터라, 퍽 오래 뿌리내려 우람하게 자란 멀구슬나무를 아무렇지 베어 없애고 주차장으로 바꾸었겠지.


  다시 만나지 못하는 멀구슬나무를 놓고 아쉽게 여겼는데, 녹동고등학교 건물 뒤쪽에 멀구슬나무 몇 그루 있다. 한겨울인데 아직 노랗게 여물지 않고 푸른 빛깔 뽐내는 열매가 달린 멀구슬나무란.


  녹동고등학교 아이들은 저희 학교에 이 예쁜 나무가 씩씩하게 자라는 줄 얼마나 느낄까. 녹동고등학교 어른들은 이녁 학교에 이 멋진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줄 얼마나 헤아릴까. 멀구슬나무 열매를 몇 얻어 우리 동백마을에도 살며시 심고 싶다. 우리 집 뒤꼍에서도 멀구슬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 4346.12.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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