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텐파리스트 1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94

 


만화가 아주머니네 아이
― 엄마는 텐파리스트 1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12.25.

 


  12월 25일 아침,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나옵니다. 모처럼 군내버스를 함께 탑니다. 큰아이는 혼자 앉고, 작은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앉습니다. 큰아이는 군내버스에서 쉬지 않고 입을 놀립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똑같이 따라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읍내까지 20분 달리는 군내버스에서 두 아이는 내내 수다쟁이가 됩니다.


  두 아이는 집에서 놀 적에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립니다. 조잘조잘 종알종알 손도 몸도 발도 입도 쉬지 않습니다. 몸으로만 놀지 않고 입으로 함께 놀아요. 입으로 놀면서 눈은 이것저것 바지런히 쳐다봅니다. 아이들 마음도 하늘을 날거나 물속을 가르거나 구름을 타면서 새털처럼 가볍겠지요.


- ‘죄송합니다. 솔직히, 애 키우는 걸 너무 쉽게 봤어요!!’ (9쪽)
-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페트병 하나 들고 신나게 노는 아들. 어째서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것은 갖고 놀지 않는 주제에 이런 일용품, 주위에 널린 재활용 쓰레기 같은 것을 갖고는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걸까요.’ (37쪽)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인데,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어린 나날을 누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 내 곁에서 놀듯이, 나는 우리 어버이 곁에서 놀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놀듯이, 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새 놀이를 스스로 만들며 놀았어요.


  큰아이는 낮잠을 거르며 놀고픈 마음입니다. 낮잠을 잘 틈이 아쉽다 여기는지 몰라요. 나는 큰아이 나이만 하던 때를 떠올리지 못하지만, 우리 큰아이 못지않게 낮잠을 꺼리면서 놀지 않았나 싶어요. 저녁에 스르르 곯아떨어지도록, 밥상맡에서 밥을 먹다가 곯아떨어질 만큼, 밥을 먹으면 아무것도 못할 만큼 곯아떨어지도록, 이렇게 바깥에서 동무들하고 개구지게 뛰어놀았으리라 생각해요.


  아이가 낮잠 없이 놀겠다 할 적에 말리지 못합니다. 달래고 다독여 보기는 하지만, 아이가 안 자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낮잠을 꼭 챙겨요. 작은아이는 낮잠을 안 자는 날에 얼마나 골을 부리는지 작은아이 스스로 더 힘들어 한다고 느껴요.


  작은아이 얼굴에 졸음이 가득 피어나면 슬슬 달래며 품에 안습니다. 품에서 벗어나 더 놀겠다면 더 놀라 합니다. 더 놀다가 스스로 힘들면 품에 안을 적에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때에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요. 졸음이 그득 밀릴 무렵 보드랍게 부르는 노래는 아이가 느긋하게 꿈나라로 가도록 재촉합니다.


- ‘이렇게 동동거리는데도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 달에 10일 정도는 부모님이 도와주러 오십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부모님의 고마움! 그동안 불효만 해서 정말 죄송해요! 고짱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면 행복해 보입니다. 할머니가 지어 주신 맛있는 밥을 매일 먹을 수 있지, 할아버지는 목욕하면서 실컷 놀아 주시지. 그야말로 완벽한 왕자님 상태!’ (55쪽)

 


  온몸을 내맡긴 아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저를 안고 재운 어버이는 저를 가장 포근하면서 따사롭게 보살펴 주리라 믿습니다. 한동안 고요하게 품에 안았다가 이윽고 잠자리로 옮겨 이불을 덮어 주리라 믿습니다. 나는 아이들 믿음대로 품에 아이를 포근히 안았다가 잠자리로 살며시 옮깁니다. 이불을 가만히 덮어 줍니다. 가슴을 토닥이며 보드라운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내 목소리가 아이들한테 달콤한 꿈밥 또는 잠밥이 되기를 빕니다. 아이를 재우는 내 목소리가 다시 내 마음으로 울리면서 내 삶은 언제나 즐거우며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시리얼,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만 신나게 그리던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인데, 어느 때에 혼인을 합니다. 혼인을 하고도 신나게 만화를 그렸는데, 어느 때에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며 돌보지만, 주마다 다가오는 마감에 허덕이면서 다시금 신나게 만화를 그려요.


  만화를 그리며 아이를 돌본달까요, 아이를 돌보며 만화를 그린달까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기 힘든 삶입니다. 만화에도 나오지만 다달이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열흘씩 ‘아이와 놀아’ 주고 ‘밥을 지어’ 주러 찾아옵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주마다 마감을 맞추어야 하는 만화를 그릴 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찾아오는 날에 만화가 아주머니는 밤샘을 하며 만화를 그리겠지요.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와 지낼 수 없고, 아이를 바라볼 수 없으며, 아이하고 알콩달콩 재미난 이야기를 엮을 수 없겠지요.


- “2, 2층까지 있는 이 넓은 약국에? 기저귀가 없다?” “아, 네. 저흰 취급하지 않거든요.” … ‘취급 좀 하라고!!’ (57쪽)
- ‘주위 선배들의 도움과 격려 속에 그럭저럭 매일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역 앞에서 난생 처음 보는 아줌마가, ‘타월 천은 더워서 한여름엔 입히면 안 돼!’라며 막무가내로 옷을 벗기지 않나. 모임 중에 아이를 좋아하는 편집장님이 고짱을 봐주지 않나. 고짱이 태어난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갖가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다 멋진 추억들이에요.’ (122쪽)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에는 골을 때리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를 이렇게 돌보거나 기르면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아주머니로서 아이와 살아가며 겪거나 부대끼는 이야기만 그득 싣습니다. 옳은 육아법이나 바른 육아법이나 재미난 육아법이란 아무것도 없어요.


  따지고 보면 그렇지요. 이렇게 해야 아이를 잘 돌보는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저렇게 해야 아이가 잘 크도록 하는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누리고 싶은 빛이 달라요.


  무엇보다,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릴 때에 재미있어요.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그린다기보다, 아이와 지내며 빙그레 웃던 이야기를 그리면 재미있어요. 아이와 살다가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 이야기를 그리면 재미나요.


  기저귀를 빨면서, 젖을 물리면서, 아이를 재우면서,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아이와 마실을 다니면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같이 씻으면서, 꽃밭 앞에 앉아서 꽃놀이를 즐기면서, 날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 샘솟습니다.


  남이 아닌 내가 누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다른 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 사랑을 기다리거나 바라는 아이가 있어요. 따순 사랑을 받으면서 따순 사랑을 새삼스레 돌려주는 아이가 있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기면 한결 수월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만큼 아이와 누리는 겨를은 사라집니다. 아이와 누리는 겨를이 사라지면 아이와 일구는 이야기가 줄어들겠지요. 아이와 누리는 겨를이 줄어 함께 나눌 이야기가 적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란 뒤에도 아이하고 웃음꽃 피울 만한 이야기를 찾기는 어려워요.


  사람이 낳은 아이가 무척 오랫동안 어버이 손길을 많이 타야 하는 까닭을 곰곰이 짚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왜 사람 아기는 이토록 손이 많이 가야 할까요. 왜 사람 아이는 이렇게 오랜 나날 지켜보고 보살피며 사랑해야 맑고 예쁘게 자랄까요.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에 나오는 아이는 더없이 개구쟁이인데, 아마 만화가 아주머니가 이 아이만 하던 어릴 적에도 더할 나위 없는 개구쟁이요 말괄량이로 놀지 않았나 싶어요. 즐겁게 놀고 신나게 사랑하면서 예쁜 이야기 길어올립니다. 4346.12.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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