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 사진을 찍는 자리
사진을 어디에서 찍는가? 찍고 싶은 자리에서 찍는다. 사진은 어디에서 찍는가? 찍어야 할 만한 자리에서 찍는다. 사진이 태어나는 곳이 따로 있는가? 이야기를 노래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사진이 태어난다.
아이들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어버이가 퍽 많다. 그렇지만, 나는 식구들 사진을 사진관에서 찍은 일이 없지 싶다. 우리 어버이도 이렇게 한 적 없다고 느낀다. 나도 우리 아이들하고 사진관에 간 일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는 내 사진기로 언제나 찍으니 구태여 사진관까지 갈 일이 없으며, 사진관까지 가자면, 시골에서는 너무 멀다.
집에서 내가 식구들 삶을 사진으로 담으니, 정작 나는 덩그러니 빠진 사진만 얻는다. 그런데, 굳이 내가 사진에 함께 나와야 할까. 내 모습이 사진에 나란히 깃들지 않더라도, 아이들 살아가고 자라나는 모습을 살피면, 이 모습에 고스란히 어버이 모습이 감돈다.
사진관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 사진관에서는 ‘사진관 사진’을 찍지. 주어진 틀에 맞추어 빙그레 웃음을 짓는 사진을 찍지. 곱게 차려입은 매무새로 사진을 찍지. 집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 집에서는 ‘집 사진’을 찍지. 으레 입는 여느 옷으로, 수수한 차림새로, 언제나처럼 살아가고 놀며 복닥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지.
사진기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도 예쁜 사진이 태어난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노는 곁에서 살그마니 어울려도 예쁜 사진이 태어난다. 바라보는 눈길이 예쁠 때에 예쁜 사진이 태어난다. 바라보는 눈길부터 예쁘게 다스리면서 예쁜 사진을 얻는다.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쥐는 자리에서 찍는다. 사진관에서는 언제나 세발이에 사진기를 붙여서 세우니, 이렇게 세운 틀에 맞추어 찍는다. 집에서는? 집에서는 사진기를 들고 부엌에도 있고 마당에도 있고 텃밭에도 있을 테니, 자리를 그때그때 옮기면서 날마다 새로우면서 새삼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배경을 따질 일 없다. 옷차림이나 얼굴을 따질 일 없다. 집안이나 마당이 좀 지저분하면 어떤가. 지저분하다 싶으면 지저분하다 싶은 대로 이야기가 태어난다. 한 해 열 해 서른 해쯤 지난 뒤를 그려 보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으면, 사진관으로 나들이 가는 길을 사진 한 장에서 떠올릴 수 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는 읍내에서 놀던 이야기를 사진 한 장에서 되새길 수 있다. 집에서 찍은 수수한 사진에서는 아하 어릴 적에 이렇게 놀았구나, 어릴 적에 이런 집에서 살았구나, 어릴 적에 이런 바람을 마시고 이런 햇볕을 쬐며 이런 밥을 먹었구나 하는 이야기를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줄줄이 길어올릴 수 있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