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2: 1947 ~ 1959
반 토시오, 테즈카 프로덕션, 아사히 신문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91

 


즐겁고 아름답게 노래하자
―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2 : 1947∼1959
 반 토시오+테즈카 프로덕션 글·그림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7.25.

 


  나는 글을 쓰기를 좋아합니다. 말보다 글을 한결 좋아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혀가 짧은 나를 놓고 국민학교에서 숱하게 창피를 겪다 보니, 말하기하고 퍽 멀리 떨어졌구나 싶어요. 혀가 짧아 ㄹ을 제대로 소리내지 못했는데, 교과서 읽기를 시킬 적마다 ㄹ 소리를 내려고 무던히 애써야 했어요. 담임교사가 날마다 무엇을 따져서 읽기를 시키는지 먼저 헤아립니다. 날짜에 맞추어 번호로 시키는지, 분단에 따라 시키는지, 자리에 따라 이리저리 돌아가며 시키는지, 가시내와 사내를 갈마들며 시키는지, 이모저모 재빠르게 따져서, 내 차례가 되면 어디를 읽는가 곰곰이 살펴요. 내가 읽을 자리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먼저 읽습니다. ㄹ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따지고, 입을 이리 벌리고 저리 잡아당기면서 잘 읽자고 다짐합니다.


  막히지 않고 잘 읽고 앉으면 히유 한숨을 돌려요. 소리가 새면 담임교사는 몽둥이로 머리를 내리치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요.


  혀가 짧으니 노래를 부르는 때에도 고단합니다. 국민학교 담임교사는 혀가 짧든 노래를 못 부르든 차근차근 이끌지 않아요. 잘 부르는 아이한테 맞춥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못 부르는 아이한테 맞추기보다 잘 부르는 아이한테 맞추어야, 못 부르는 아이도 잘 부를는지 몰라요. 그런데,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느긋하게, 차근차근 부드러이 이야기하며 가르칠 법한데, 왜 이렇게 안 했을까 궁금합니다. 조금만 못 하면 때리고, 조금 더 못 하면 두들겨패며, 아주 못 하면 아주 깔아뭉개듯이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교사답지도 어른답지도 못하다고 느꼈어요. 어린 나날부터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겪어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하기하고는 차츰 멀어지면서 글쓰기하고 가깝게 지냈다고 느껴요.


- 데즈카 오사무는 무더위 속에 아카바네에서 우에노까지 걸어갔습니다. 도쿄의 교통기관을 잘 몰랐다고는 해도 참 잘도 걸어간 것입니다. (13쪽)
- 여담이지만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 중 《도로로》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전란으로 양친을 잃은 천애고아이면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냉혹한 사회를 살아가는 주인공. 테즈카 오사무의 소망을 담은 이 주인공은 당시 부랑아들이 모델이 되었습니다. (14쪽)


  어릴 적 버릇은 아직까지 있습니다. 아마, 버릇이라기보다 삶일 테지요. 나는 글을 쓰면서 내 글을 늘 스스로 읽습니다. 손으로는 글을 쓰고, 눈으로 글을 좇으면서 입으로 글을 읽어요. 글을 쓰면서 내 글을 내 입으로 읽습니다. 어릴 적부터 혀짤배기라고 놀림을 자꾸 받다 보니, ‘혀짤배기도 얼마든지 말을 잘 할 수 있다’는 모습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이어집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늘 내 글을 입으로 말하다 보니, 글을 쓰는 매무새가 사뭇 달라져요. 그저 글만 쓴다면 내 글은 마냥 글투가 될 텐데, 글을 말로 읽으면서 쓰니, 나 스스로 귀로 듣기에 즐겁도록 글을 쓰는 결로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따로 ‘입말 되도록 글을 쓰지’는 않지만, 귀로 들을 만한 말이 아니라면 글로 못 쓰는 매무새가 몸에 배어요.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늘 입으로 되뇌니, 시나브로 내 혀짤배기 소리도 차츰 나아지는구나 싶어요. 혀짤배기가 제대로 소리를 못 내는 말마디를 굳이 말하려고 용을 쓰지 말고, 혀짤배기도 소리를 잘 내는 낱말을 고르고 말씨를 살펴 ‘말을 하는’ 매무새가 길이 들고, 글도 내 나름대로 새로운 맛이 나는구나 싶어요.


  이러면서 참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무나 이웃하고 ‘말을 나누는 재미’를 새삼스레 익힙니다. 다만, 말을 나누더라도 곧잘 혀짤배기 소리가 튀어나오지요. 글을 쓰며 말할 적하고 말만 할 적은 달라요. 글로 쓰면서 말을 하면 혀짤배기 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말만 할 적에는 아직 혀짤배기 소리가 나와요. 어릴 적에는 이렇게 혀짤배기 소리가 나오면 얼굴이 벌개졌는데,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벌개지지는 않고, ‘혀짤배기는 내 모습인걸’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다음 말로 넘어갑니다.


- “웃음이 없는 만화는 의미가 없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진정한 만화란 그림에 따라, 그 표현에 따라 독자를 울리거나 흥분시키거나, 또는 차분히 생각하게 하여서 그제야 그 진가를 나타낸다. 우는 만화와 화내는 만화가 있는 이상, 만화는 더욱 그 표현 범위를 넓혀 갈 수 있다.” (24쪽)
- “어른의 감각으로 어린이 만화를 그리는 도쿄 만화가보다, 어린이의 감각을 잃지 않은 우리가 나서야겠죠!” (46쪽)


  글을 쓰며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노라면, 내가 혀짤배기 아니었으면 글을 썼을까 싶기도 합니다. 혀짤배기 아니었어도 글을 썼을 텐데, 그때에는 어떤 글을 썼을까 가끔 궁금해요. 시외버스를 타고 먼길 마실을 다닌다든지, 기차를 타고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가는 길에, 곧잘 이런 대목을 돌아봐요. ㄹ을 제대로 소리낼 줄 알고, 노래도 썩 잘 부르는 내 모습이었으면, 난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하고.


  말을 안 더듬고 할 수 있으면 이런 모습대로 글도 훨씬 잘 쓴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이런 걱정이나 저런 근심이 없이 퍽 훌륭한 자리로 나아갔을는지 모릅니다. 그런 모습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아무 걱정이나 근심이 없이 살았으면, 그런 내 모습은 다른 사람들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싶어요. 참말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는지, 참말 나답게 내 삶을 새롭게 일구면서 글을 빚을 수 있을는지 아리송해요.


  여섯 살 큰아이는 말을 또박또박 아주 잘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을 쉬지 않습니다. 조잘조잘 온 집안을 큰아이 목소리로 채웁니다. 밥을 하는 곁에서, 잠자리에 드는 곁에서, 집 안팎에서 노는 동안 언제나 조잘조잘 종알종알 떠듭니다.


  뜨거운 국물이나 기름이 튀랴 좀 옆으로 가라 해도 옆으로 안 갑니다. 찰싹 달라붙어서 종알종알 노래합니다. 노래를 하지요. 참말 노래를 부릅니다. 수다가 노래와 같고, 어느 때에는 아예 노래를 잇달아 불러요.


  즐겁니? 즐거우니 떠들고 즐거우니 노래할 테지? 혀짤배기 소리 하나 없는 큰아이를 보면서, 곁님처럼 혀를 동그랗게 말 줄 알고 ㄹ은 아주 훌륭하게 소리를 내는 큰아이를 보면서, 말하고 이야기하며 노래하는 재미를 이렇게 신나게 누리는구나 싶어 놀랍고 반갑습니다.


  그런데, 혀짤배기 소리가 없고 말을 더듬지 않는대서 신나게 말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여섯 살 큰아이는 다섯 살 적에도, 서너 살 적에도, 두 살 적에도, 그야말로 수다쟁이였어요. 아직 어려 소리가 새더라도 끝없이 종알거립니다. 아직 말을 잘 몰라 틀린 낱말로 말을 하더라도 씩씩하게 종알거립니다. 왜냐하면, 종알거리고 싶거든요. 말하고 싶거든요. 노래하고 싶거든요.


  틀린 낱말이건 아니건 대수롭지 않아요. 옳게 쓰거나 맞게 쓰거나 대단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요,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를 뿐입니다.


- “너는 어느 게 좋으니?” “그야 만화지요.” “그럼 좋아하는 길을 가렴.” (50쪽)
- “이제 전쟁은 지긋지긋해. 전쟁 따위, 결국 모두가 상처입을 뿐이잖아!” (55쪽)
- “〈밤비〉의 언뜻 보면 단조로워 보이는 동물의 생태 속에는 평범한 드라마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만한, 철학이나 인생관이 있지 않은가. 《정글 대제》도 사자가 밀림의 왕이 되어 끝나는 것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음에 이르고, 생명은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자연은 태초의 모습 그대로라는, 그런 자연계의 영속성을 표현해 보자.” (89쪽)


  만화지기 데즈카 오사무 님 삶을 기리면서 반 토시오 님과 테즈카 프로덕션이 함께 빚은 만화책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2 : 1947∼1959》(학산문화사,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은 뒤 〈신의 베레모〉라는 일본연속극을 보았어요. 어느 날 문득 이 일본연속극을 보았는데, 데즈카 오사무 님이 《블랙잭》이라는 만화책을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주어요. 만화책을 그려서 번 돈으로 만화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깜짝 놀랐어요. 연속극에 나오는 배우들 연기는 어설프지만, ‘만화지기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비슷하게 연속극으로 엮어 선보인다’는 대목이 놀라워요. 일본사람이 데즈카 오사무 님을 얼마나 깎듯이 애틋하게 아끼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연속극 〈신의 베레모〉에서도 나오는 말이요, 데즈카 오사무 님 자서전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이녁은 손수 그려내는 만화를 ‘양과 질 모두 가장 훌륭하’도록 힘을 쏟았다고 해요. 만화를 그리기도 가장 많이 그리고, 그린 만화는 만화대로 가장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쏟아요. 잡지에 싣는 작품이 처음에 그리 사랑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차츰 알아보리라 믿으면서 ‘인기투표 1위’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려 해요.


  마감에 맞추어 다 그린 작품조차 도움이와 편집자한테 찬찬히 보여주면서 “재미있습니까? 참말 재미있습니까?” 하고 물어요. 모든 사람한테 다 물어 보는데, 왜 물어 보느냐 하면, 이럭저럭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 님 스스로 어딘가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여기는 좀 아쉽다’ 하고 말해 주기를 바라지요.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해 주면 “그렇지요? 나도 재미없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말하면서, 애써 그린 원고를 모두 버리고는 아예 새 작품으로 그립니다.


-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없어, 시간에 맞추려면 난잡한 것밖에 안 되는데.” “테즈카 씨, 어떤 것을 그리든 괜찮네만, 어린이를 배신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게나. 어린이를 배신할 바에야 만화를 그만두는 편이 낫지.” 불쑥 내던진 카토 켄이치 씨의 말. 이후 다시금 테즈카 오사무는 마음을 다잡고 만화를 그리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110쪽)
- “테즈카 선생님이 저렇게 바빴던 이유는 물론 에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자금 조성이라는 목표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선생님 자신이 넘치듯 뿜어져 나오는 주제, 아이디어를 그리고 싶어서, 너무나 그리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질뿐만 아니라 양에 있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마음이 선생님을 움직였던 것이 아닐까.” (178쪽)


  만화책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2 : 1947∼1959》를 읽고, 연속극 〈신의 베레모〉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글을 쓰며 살기로 한 내 다짐이라면, 나는 글쓰기에서 누구보다 많이 쓰고, 힘껏 쓴 글은 어떤 글보다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할 노릇일 테지, 하고 깨닫습니다. 바지런히 쓰는 글 모두 아름다운 빛이 서릴 수 있도록, 힘껏 쓰는 글마다 따사로운 사랑이 드리울 수 있도록, 온마음 쏟을 때에 비로소 글쓰기가 이루어진다고 느껴요.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이들과 마주하는 삶도 언제나 가장 즐겁고 아름다울 때에 참말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즐겁게 살며 놀아야 즐거워요. 아름답게 ‘노래하며’ ‘노래해야’ 아름답지요. 아름답게 노래하지 않으면 노래가 아름답지 않아요. 이름난 누군가 불러 주어야 아름다운 노래가 되지 않아요. ‘아름다운 마음’일 때에 아름다운 노래예요. 그래서, ‘아름답게 노래해’야,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요.


-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만 읽어서는 안 돼요. 책을 더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공부해서 지금의 만화보다 더 좋은 것을 그려 주세요.” (181쪽)
- “여러분, 앞으로도 많이 공부해 주세요. 만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전 의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답니다. 우렁이 정충의 연구지요.” (217쪽)


  씨앗을 심는 사람은 한 해만 씨앗을 심고 그치지 않습니다. 해마다 새롭게 씨앗을 심습니다. 해마다 새롭게 씨앗을 심으면서 해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 하나 훌륭히 썼으니 이제 글을 안 써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훌륭하다 여기는 글은, 어느 글지기가 빚은 숱한 글 가운데 하나예요. 그 글을 바탕으로 다른 훌륭한 글을 쓰지 않아요. 그 글은 지난해에 심은 씨앗과 같아요. 글 하나 내놓았으면 새롭게 새 씨앗을 심듯이 새 글을 쓰기 마련이에요. 글을 하나 내놓고, 새롭게 글을 또 내놓으면서 새롭게 배우지요.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도, 어제 하루 잘 ‘놀아 주었’으니, 이튿날에는 안 ‘놀아 주어’도 되지 않아요. 날마다 새롭게 놀아요. 날마다 새롭게 가르치고 배우고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하면서,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자라요. 서로 돕고 아끼면서 삶을 노래해요.


  즐겁게 일구는 삶입니다. 아름답게 가꾸는 사랑입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삶이에요.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는 사랑이에요.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만화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