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내가 차리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지만, 내 삶은 나 스스로 일굽니다. 내 삶은 우리 어버이가 이끌 수 없습니다. 우리 어버이는 이녁 삶을 고이 나한테 보여줄 수 있지만, 나는 어버이한테서 삶을 배우거나 받아들일 뿐, 내가 걸어갈 길은 언제나 스스로 찾아서 살피고 가꿉니다.
곁님과 나는 우리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 삶은 아이 스스로 일굽니다. 아이 삶은 곁님도 나도 이끌 수 없습니다. 곁님과 나는 아이한테 두 어버이 삶을 찬찬히 보여줄 수 있지만, 나는 아이한테 삶을 보여주거나 알려줄 뿐, 아이가 걸어갈 길은 언제나 아이가 스스로 찾아서 살피고 가꿉니다.
밥은 내가 차립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차린 밥을 맛나게 받아먹습니다. 풀밥을 차리건 만두국을 하건 된장국을 내밀건 고구마소시지볶음밥을 하건, 때로는 라면이나 국수를 삶건, 아이는 어버이가 내주는 밥을 즐겁게 받아먹습니다. 어버이인 나는 아직 어린 아이 입에다가 밥을 떠넣어 줄 수 있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기운을 내어 씹고 삼켜서 삭혀야 합니다. 내가 씹어 줄 수 없고, 삼켜 줄 수 없으며, 삭혀 줄 수 없어요. 젖떼기밥을 먹는 몇 달 동안 어버이가 입으로 씹어서 아이한테 내밀기도 하지만, 어버이가 입으로 씹어서 주더라도 아이 스스로 받아먹어야지요.
아이들은 어버이가 낳아요. 아이들은 어버이가 하는 말을 배우고, 어버이가 꾸리는 삶을 배우며, 어버이가 지내는 터를 고향으로 삼아요. 그렇지만, 아이는 아이랍니다. 아이는 스스로 빛나요.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사랑스럽지요.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고, 밥상에 나란히 앉아서 먹다가, 작은아이 숟가락을 보고는, 무언가 하나 깨닫습니다. 내가 우리 어버이한테서 제금나서 따로 살듯, 나는 내 길을 걷는 만큼,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하고픈 일을 찾아 스스로 눈빛을 밝힐 테고, 스스로 삶길을 걸어가겠지요.
많이 어린 요즈음에도 아이들은 저희끼리 놀지, 어버이가 놀아 줄 수 없어요. 어버이는 아이들이 놀 적에 곁에서 살짝 거들 뿐입니다. 아이들 놀이는 아이들 스스로 찾고 캐내며 누려요. 아이들더러 흙놀이는 이렇게 하라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아이들더러 고무줄놀이나 소꿉놀이는 저렇게 하라고 이끌 수 없어요. 아이들 스스로 놀고픈 대로 놀 뿐이에요. 아이들이 오 분만 놀아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한 시간 동안 놀아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희 삶결과 몸과 마음에 맞추어 차근차근 놀고 뛰며 먹고 자고 움직이며 노래합니다.
밥은 내가 차리지만, 숟가락질은 아이가 합니다. 푸른 숨결은 나무와 풀이 베풀지만, 우리 스스로 즐겁게 들이마십니다. 해는 날마다 뜨고 지지만, 햇볕과 햇빛과 햇살은 나 스스로 들에 서서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꿈꿉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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