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월요일에 부칠 편지를 일요일 낮에 쓴다. 여느 흰종이를 쓸까 하다고 그림종이를 꺼낸다. 도톰한 그림종이가 편지를 쓰기에도 좋다. 연필을 쥔다. 사각사각 소리가 듣기에 좋다. 그러고 보면, 국민학교 다니며 연필을 쓸 적에 사각사각 소리 참 듣기 좋았다고 느낀다. 시험을 치르거나 무슨 숙제를 하거나 하면, 교실이 쥐죽은 듯이 조용한데 연필 사각사각 소리만 울린다. 시험을 치르다가도 곧잘 연필 사각사각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살며시 감곤 했다.


  그림종이에 연필로 편지를 쓰고 나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빈자리에 가랑잎 몇 가지를 그린다. 그러고도 허전해서 도토리 몇 알 그린다. 그러고도 허전하기에 살살 빛깔을 입혀 본다. 여러 빛깔을 고루 써서 하얀 바탕에 새 옷을 입힌다. 꽤 볼 만하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모두 이렇게 손으로 편지를 썼지. 아무렴. 여러 사람한테 편지를 띄울 일 있으면, 참말 편지쓰기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지. 그런데 이제는 편지쓰기를 손으로 하는 사람 드물고, 종이에 연필로 적는 사람 드물다. 글을 쓰는 사람이 굳이 원고지에 글을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편지만큼은 종이에 적고 우체국으로 찾아가거나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야 스스로 글맛을 곱게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편지쓰기란, 연필을 쥐어 종이에 적는 편지쓰기란, 나무를 손에 쥐고 나무에 이야기를 적어 띄우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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