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다 짓고서

 


  식구들 저녁으로 먹을 밥을 다 짓는다. 곁님과 두 아이는 끝방에서 셈틀을 켜서 뭔가 한참 들여다본다. 이동안 혼자 부엌에서 깨작거리면서 밥과 국을 끓인다. 나물비빔은 아침에 넉넉히 했으니 저녁에는 그릇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된다. 국이 알맞게 식을 무렵, 너무 뜨겁지 않고 따스한 기운 감돌 때에, 식구들 불러 조그마한 부엌에서 저녁을 먹어야지.


  섣달 그믐을 코앞에 둔 저녁은 벌써 어둡다. 한 해에 한 차례 누리는 가장 어두운 저녁이 다가온다. 다섯 시조차 안 되어도 어스름이 드리우는 섣달이란 우리한테 어떤 빛일까. 여덟 시가 넘어도 환한 한여름은 또 우리한테 어떤 빛일까.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내 몸이 되어 주는 쌀알을 생각한다. 지난겨울 어떤 꿈 품으며 볍씨로 고이 쉬다가, 지난봄 어떤 사랑 받으며 모로 자라다가는, 지난가을 어떤 손길 타면서 알뜰살뜰 쌀알로 거듭났을까. 밥 한 그릇에는 나락이 봄여름가을 골고루 누린 따사로운 햇볕이 담뿍 깃들었다.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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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15 18:07   좋아요 0 | URL
저도 밥을 지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네요...
그래도 먹어야 사는데... 말입니다..

숲노래 2013-12-15 18:40   좋아요 0 | URL
음... 그러실 때에는
가끔 한 끼를 건너뛰어 보셔요.

꼭 끼니를 다 맞추어야 하지 않으니까요.
기운이 안 날 적에는
참말
끼니를 한 끼니나 두 끼니 쉬면서
조용히 지내 보시면
외려 몸과 마음이 한결 차분하면서 홀가분해지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