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2.10.
: 나도 이제 구를게요
- 바람이 살짝살짝 불어도 해가 걸리면 따스한 겨울이다. 남쪽 끝자락 고흥은 영 도 밑으로 거의 안 떨어지니 겨울에도 포근하지만, 다른 고장에서는 눈발이 날리겠구나 싶다. 아이들한테 옷을 두툼하게 입으라고 얘기한다. 자전거를 마당으로 꺼낸다. 안장 조임쇠를 살핀다. 안장 조임쇠 고무가 거의 다 닳았다. 아슬아슬하지만 한두 차례 더 탈 수는 있겠구나 싶다. 읍내 자전거집에 가서 안장 조임쇠를 장만해야겠는데 읍내에 나갈 일이 좀처럼 없다. 따로 일거리를 만들어서 얼른 나들이를 해야지, 이래서야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못 다니겠네.
-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히니 곧 잠들 낌새이다. 큰아이는 모자와 장갑을 씌우고 샛자전거에 앉힌다. 오늘은 여느 날보다 더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을 어귀 벗어날 즈음 큰아이가 “나도 이제 구를게요.” 하면서 자전거 발판을 굴러 준다. 고맙구나. 너도 제법 키가 자랐으니 발판을 구르면 참말 고맙지. 그런데 큰아이가 자전거 발판을 구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뒷거울로 살피니,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자꾸 밑으로 내려간다. 뭘 하나? 또 샛자전거에서 이래저래 노는가. 얼마 뒤 큰아이 발이 길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몸을 아래로 내리며 놀다가 그만 팔에 힘이 없어 다시 위로 못 올라오며 대롱대롱 매달린다. 서둘러 자전거를 멈춘다. 조금 큰 소리로 큰아이를 나무란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위험한 짓을 하면 되니.
- 꾸지람을 들은 큰아이 얼굴이 꾸물거린다. 큰아이한테 말한다. “벼리야, 달리는 자전거에서 놀더라도 위험하게 놀면 안 돼. 그렇게 위험하게 하다가 떨어지면 크게 다쳐. 그러니 그렇게 놀지 말라고 말하잖아. 아버지가 소리를 쳤으면 미안해.” 큰아이는 그대로 꾸무룩한 얼굴이다. “벼리야, 자전거 타지 말까? 집으로 돌아갈까? 자전거에서 시무룩한 얼굴 하면 아버지도 자전거 달리기 싫어.” 자전거를 세우고 묻지만 아무 말을 않는다. 더 말을 않고 우체국으로 간다. 우체국 앞에 선다. 자전거에 내린 큰아이가 꼼짝을 않는다. 안으려 하면 팔을 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물을 흘린다. 자전거에서 떨어질까 봐 무서웠는데 다독이지 않고 소리만 질러서 아이가 마음을 다쳤나. 한참 있다가 아이를 왼어깨로 안는다. 큰아이를 안은 채 소포꾸러미를 오른손으로 들고 들어간다. 이십 킬로그램 가까운 아이를 왼어깨에 안은 채 소포를 부치려니 두 팔이 다 저리다.
-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달걀과 김을 사는데 큰아이가 면소재지 가게에 있는 ‘폴리 장난감’을 보더니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저것 사 달라고 조른다. “벼리야, 우리는 장난감 사러 여기 나오지 않았어. 저 장난감은 안 사.” 큰아이는 큰소리를 내며 사 달라며 떼를 쓴다. 문득 저것 사 주며 달랠까 생각해 보다가, 그것과 이것은 아주 다른 일인 만큼 장난감은 장난감을 사기로 하고 나올 때에 사고, 오늘은 다른 볼일로 나온 날이니 지나치기로 한다. 벼리야, 우리 집에 있는 장난감들은 어쩌고 왜 새 장난감을 바라니.
-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빵 한 점 집으니 큰아이 마음이 조금 풀린 듯하다. 살짝 한숨을 돌린다. 작은아이는 잘 잔다. 찬바람이 불건 말건 옆으로 살짝 기댄 채 새근새근 잔다. 네 누나도 그 수레에서 참 오래 많이 잠을 잤단다.
- 동오치마을 지나 동호덕마을로 접어들 무렵, 큰아이가 춥다 말한다. 그러게, 옷을 제대로 챙겨 입으라 했잖니. 겨울에는 해가 올라온 낮에도 자전거를 달리면 춥단다. 내 겉옷을 벗어 큰아이 가슴에 두른다. “아버지는 어떡하고요?” “아버지는 너희 태우고 자전거 달리면 땀이 나니 괜찮아.” 반소매 차림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찬바람을 맞바람으로 받으니 땀이 흐를 겨를이 없다. 손과 팔뚝과 팔이 모두 발갛게 언다. 그래도 겨울에는 이렇게 살짝 어는 느낌이 좋아 자전거를 달린다. 아이들도 이런 찬바람 바알갛게 어는 느낌을 몸으로 받아들일까.
- 빈들 사이를 지나 마을에 닿는다. 큰아이더러 대문 열어 달라 말한다. 작은아이는 집에 닿을 무렵 잠에서 깬다. 더 자지 벌써 일어나니. 작은아이 수레에서 내리고 자전거를 제자리에 놓는다. 대문을 닫고 마당을 치운다. 기지개를 켠다. 후박나무한테 인사를 하고 수레에서 짐을 꺼내 방으로 들어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