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책

 


  이틀을 인천에서 묵으며 사흘 동안 서울에서 일을 하고 고흥집으로 돌아온다.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네 시간 사십 분,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 네 시간 이십 분, 이렇게 모두 아홉 시간에 걸쳐 책을 일고여덟 권 읽은 듯하다. 이듬해나 그 다음해에 선보이려 할 그림책 원고도 덜덜거리는 시외버스에서 한 꼭지를 썼고, 서울에서 만날 분들한테 드릴 ‘시 선물’ 글을 예닐곱 꼭지 썼다. 덜덜거리고 시끄러운 시외버스에서 책도 참 많이 읽었구나 싶은데, 막상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거나 인천에서 서울로 갈 적에는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잠이 쏟아지더라. 쏟아지는 잠을 달래며 책 몇 줄 읽다가 그만 가방에 넣어야 하더라.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시외버스를 달려 고흥으로 돌아올 적에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느라 너무 마음과 힘을 많이 쓴 탓일까. 택시를 불러서 시골집에 닿은 뒤로는 등허리와 팔다리가 몹시 결리고 쑤셔 잠이 오지 않고, 겨우 잠이 들으니 이튿날에는 온몸이 매우 뻑적지근해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리에 드러누워 곰곰이 생각을 기울인다. 아무리 시끄럽거나 덜컹거리는 데에 있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 들려주는 책을 손에 쥐면, 모든 시끄러움과 덜컹거림을 모른다. 옆에서 누가 떠들어도 모른다. 어디를 지나가더라도 모른다. 바깥이 어둡든 밝든, 바깥이 깊은 땅속이든 도시 한복판이든 하나도 모른다. 오직 책을 들여다보면서 책에서 흐르는 빛을 바라볼 뿐이다.


  서울 한복판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지하철 쇠바퀴 극극 긁는 쇳소리 아닌, 사랑을 속삭이는 새로운 소리를 담았다고 할 만하다고 느낀다. 꿈을 노래하는 소리요 삶을 밝히는 소리를 누리려고 손에 책을 쥐는구나 싶다.


  우리 어른들은 어디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까. 자동차 넘치는 데에서 자동차 소리에 파묻히지는 않는가.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소리를 듣는가. 자동차 물결치는 곳에서 자동차 소리에 휘둘리지는 않는가. 큰길가에 있는 책방으로 들어선다. 고작 유리문 하나로 큰길과 책방이 갈리는데, 책방에서는 어떠한 자동차 소리도 스며들지 않는다. 책방에서는 오로지 책내음과 책노래와 책빛이 흐른다. 책 하나는 우리한테 새로운 소리를 들려준다. 책 하나는 우리한테 새로운 빛을 베푼다. 책 하나는 우리한테 새로운 사랑을 건넨다. 4346.1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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