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선물과 겨울

 


  곁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기도 일산 구산동에서 지내신다.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드는 곳이라 할 텐데, 일산에 그득한 아파트 아닌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방에서 지내신다. 얼마 앞서 닥친 추위에 그만 난방조차 못 하고 얼음방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내가 서울로 바깥일 나올 적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곁님이 두툼한 매트와 침낭과 천막을 주문해서 일산에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 얘기했고, 곁님은 이것저것 꾸려서 부친다. 매트랑 침낭이랑 천막 값으로 칠십만 원쯤 들었단다. 우리 집 은행계좌에는 사십만 원쯤 있으니 이달 카드값 채우려면 빠듯하겠네 싶지만, 카드값이란 어떻게 해서든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겨울 추위는 하루 빨리 무언가 마련해야 할 일이다. 곁님 말을 듣고는 카드값을 비롯해 우리 집 기름값 벌 만한 일거리 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바깥일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외버스에서 한 시간쯤 들여 그림책 원고를 하나 쓴다. 새봄 맞이한 지난날 시골마을 이야기가 술술 샘솟아 한 시간쯤 들여 찬찬히 공책에 적었다.


  서울에서 낮 두 시 사십 분에 떠난 시외버스는 고흥 읍내에 저녁 일곱 시에 닿는다. 마을로 들어가는 마지막 군내버스는 여덟 시 반에 있지만, 읍내 언저리에서 한 시간 반이나 헤맬 수 없는 터라 택시를 불러서 들어간다. 시골집에 닿으니 작은아이는 잠들었고, 큰아이는 펄펄 뛰며 노는데, 일산에서 장모님이 김치랑 떡을 보내셨단다. 아이고, 일산집은 추위에 힘들 텐데 무슨 돈이 있어 이렇게 보내시나. 사위가 생일이라며 떡을 보내셨다는데, 나이 마흔에 선물이 뭐 대수로운가. 그저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하지요.


  그러고 보니, 12월 7일 내가 태어난 날이 이제 하루 앞이로구나. 열 몇 해 동안 쓰던 011번호를 이제 더 쓸 수 없어 010번호로 바꾸었다. 마침 우리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새 번호 알리기도 해야 해서 전화를 건다. 나를 낳아 주어 고맙다는 인사는 쑥스러워 못하고, 음성 시골집 물 얼지 않았느냐고만 여쭙고 끊는다.


  일산 할머니가 김치랑 떡을 보낸 까닭이 ‘내 생일 선물’이라고 곁님이 아이들한테 말하니, 여섯 살 큰아이가 “생일은 내 생일이 예전이었는데 왜 아버지 생일 선물이야?” 하고 묻는다. 얘야, 얘야, 너만 태어나지 않았잖니. 너는 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고, 네 어머니랑 아버지는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 음, 여섯 살이면 아직 잘 모를 만한가. “예전에 내 생일에 떡 먹었는데.” 하고 말하는 큰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녀석들 저녁 열 시가 가까운데 잘 생각을 않는다. 불을 다 끄고 드러누워 조곤조곤 나긋나긋 자장노래 부르면 자려나. 그나저나 올해 내 생일인 대설 절기에 날이 포근할 듯하네. 일산에 계신 장모님과 장인어른 추위에 힘드실 텐데, 참 고마운 날씨이다.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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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부모 삶을 떠올리게 하는 책들 몇 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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