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도 겨울눈 책읽기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글문화연대로 찾아간다. 서울시에서 공문서와 보도자료에 쓰는 말이 얼마나 올바른가를 살펴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일감을 맡겼다고 해서, 이 일을 함께 하기로 했다. 뜻있는 여러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이 일감을 맡아 해야 할까 생각한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낮밥을 먹기로 한다. 사무실에서 나와 밥집으로 가는 길에 두리번두리번 돌아본다. 이 둘레에 어떤 나무들 어떻게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잎이 안 진 나무가 있지만, 웬만한 나무는 모두 잎이 졌다.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잎 한두 닢 달랑달랑 남기도 하지만, 거의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덩그러니 있다. 그런데, 잎 모두 진 은행나무이건, 목련이건, 겨울눈 앙증맞게 있다. 너희는 잎을 떨구면서 벌써 겨울눈을 품었니? 사람들은 아마 너희를 ‘앙상한 나무’라 말할는지 모르지만, 앙상하다는 겨울나무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아. 누구보다 먼저 잎을 떨구는 대추나무에도 겨울눈 그득하던걸.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에도, 감나무와 매화나무에도 온통 겨울눈 그득하던걸. 나란히 걷던 한 분한테 “저기 나무 좀 보셔요. 잎 떨군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겨울눈이 가득가득 맺혔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살거나 일하는 이들도 둘레에서 씩씩하게 뿌리내리며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이 나무들을 살며시 보듬거나 얼싸안아 주기를 빈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