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뜻
나는 왜 글을 쓰고 책을 내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처음 글을 쓰던 날부터 돌이키면, 남들이 쓰는 글은 굳이 내가 쓰지 말자고 여겼다. 남들이 읽는 책은 굳이 나까지 안 읽어도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책은 한 사람만 읽으라고 태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열 사람이나 백 사람, 또는 천 사람이나 만 사람쯤은 읽는다. 남들이 안 읽는 책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 꼴을 갖추어 태어났으면 나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읽기 마련이다. ‘남들이 읽는 책’이란 ‘남들이 자주 추켜세우거나 알리는 책’이다.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리는 책들이라든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책이든 내가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된다. 애써 토를 단다면, 사람들이 많이 읽는대서 나까지 이 물결에 휩쓸릴 까닭이 없다뿐이다.
남들이 안 쓰는 글이 있을까. 글쓰기에서는 아예 없지 않으리라 본다. 이를테면,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이 나라 골골샅샅 씩씩하게 책살림 일구는 헌책방이 저마다 어떠한 책빛인가를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익히도록 길동무 구실을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한국말 밝히는 새로운 사전을 엮으면서 한국말 사랑하는 빛을 들려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집일 도맡으며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삶을 노래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매우 적다. 아예 없지는 않다만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식구들과 시골로 씩씩하게 찾아가서 시골집 얻어 살아가기는 하는데, 돈이 얼마 없어 땅은 하나도 못 사고 집만 덩그러니 장만해서 이렁저렁 살아가는 하루를 글로 쓰는 사람이 대단히 적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농약과 비닐과 화학비료와 항생제를 하나도 안 쓰면서 자가용 또한 몰지 않는 삶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드물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눈 씻고 찾아보아도 좀처럼 안 보인다. 권정생 님이 사셨을 적에는 권정생 님쯤 있었지만, 이제는 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남들이 안 쓰는 글을 쓴다고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쓰고픈 글을 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밝히고 빛내면서, 내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노래 들려줄 만한 빛이 되도록 글을 쓰고 싶다. 빛을 살리는 글을 써서 빛을 살찌우는 책을 내놓고 싶다. 빛을 사랑하는 글을 써서 빛을 꿈꾸는 책을 나누고 싶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