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78] 글지기, 글순이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작가’라는 이름을 쓰는데, 나는 이 이름이 영 내키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이름을 흔히 썼을 테지만, 이제는 새로운 넋으로 새 이름을 붙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분은 ‘글쟁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 ‘글꾼’이라는 이름을 쓰는 분도 있어요. 나도 가끔 이런 이름을 써 보았지만, ‘글쟁이’와 ‘글꾼’도 그다지 반갑지 않아요. 나는 도서관을 열어 꾸리는 일을 하는데 ‘도서관쟁이’나 ‘도서관꾼’처럼 쓸 만하지는 않거든요. 내가 쓰는 이름은 ‘도서관지기’입니다. 집에서 식구들 밥을 늘 차리니 ‘밥지기’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밥 잘 먹는 아이들한테 ‘밥순이·밥돌이’ 같은 이름을 붙이곤 하고, 책을 잘 읽는 아이들한테 ‘책순이·책돌이’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문득 한 가지 떠오릅니다. 그러면, 글을 쓰는 내 삶은 ‘글지기’라 하면 되겠다고. 그림을 그릴 적에는 ‘그림지기’ 되고,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사진지기’ 되리라 느껴요. 빨래를 할 때에는 ‘빨래지기’입니다. 집을 지키는 날은 ‘집지기’ 되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녁 삶을 스스로 쓸 수 있다면, 아이들한테 ‘글순이·글돌이’라는 이름을 주고 싶어요. 나한테도 스스로 ‘사진돌이·글돌이·도서관돌이’라는 이름을 줄 수 있습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