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어 주는 어린이

 


  꼭 말을 해 주어야 풀을 집어먹는다. 때로는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어 주어야 한다. 내 어릴 적 어머니가 내 입에 김치를 넣어 주던 일이 으레 떠오르지만, 나는 삭힌 배추를 못 먹는 몸이고 매운 것도 못 먹는 몸이다. 이런 몸인 줄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만 어릴 적에 무엇을 알았을까. 우리 어머니는 이녁 아들 몸이 어떠한 줄 모르는 채, 아니 아셨겠지만 아버지 등살에 밀려 나한테 억지로 김치를 먹이려 하셨으리라 본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은 풀을 못 먹을까? 글쎄, 풀을 못 먹는 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못 먹고 물만 마시는 양애란 님 같으면 풀조차 못 드실 테지만, 풀을 못 먹을 사람도 아예 없지 않을 터이나, 밥부터 풀열매이다. 오이도 무도 감자도 고구마도 모두 풀이라 할 만하다. 사다가 먹든, 둘레에 널린 밭에서 뜯든, 시골에서는 으레 풀밥이 된다. 사름벼리야, 너 스스로 네 몸을 지키고 살리고 북돋우고 가꾸려 한다면, 풀밥을 즐겁고 맛나게 먹으렴. 스스로 몸을 지켜야 몸이 아름답다. 스스로 몸을 사랑해야 몸이 튼튼하다. 스스로 몸을 가꾸어야 몸이 빛난다. 억지로 먹이려는 풀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맛나게 먹으면서 흙빛과 바람내음을 이 풀포기에서 느낄 줄 알아야 해. 그게 바로 밥맛이야. “먹어 주는” 일은 반갑지 않아. “맛있게 즐겨”야 한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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