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바라보는 눈길

 


  책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다.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니까. 책을 바라보는 눈길이 사랑스럽다.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사랑스러우니까. 누군가 마음에 품으며 좋아하는 꿈을 꾸는 사람은 책을 마주할 적에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흐르는 따사로운 꿈’과 같은 눈길이 된다. 어딘가 아프거나 힘들거나 슬픈 사람은 책을 마주할 적에도 아프거나 힘들거나 슬픈 빛이 시나브로 나타난다.


  느긋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바쁘게 책을 읽거나 책하고 등진다.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넉넉하게 책을 읽는다.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빠듯하게 책을 읽거나 책하고 등돌린다.


  삶을 가꾸는 몸짓에 따라 책을 돌보는 몸짓이 흐른다. 삶을 다스리는 손길에 따라 책을 보듬는 손길이 흐른다.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나는 우리들일까. 어떤 사랑으로 책을 읽으려는 우리들인가. 어떤 꿈을 키우며 책을 사귀는 우리들이려나.


  마음이 맞는 사람과 책방마실을 하며 같은 책을 나란히 들여다보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와 함께 책방마실을 하며 서로 같은 책을 오순도순 들여다보면 어떤 느낌일까.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한테 물려줄 책을 생각하는 어버이는 어떤 느낌일까.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이를 떠올리며 선물로 책 하나 띄우고 싶은 어버이는 어떤 느낌일까.


  주머니를 털어 책을 장만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담을 때에 책이 된다. 튼튼하고 좋은 나무로 짠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하더라도 가슴으로 읽고 새길 때에 책이 된다. 고운 종이로 싸서 동무한테 선물한다 하더라도 사랑을 담뿍 실어 건넬 때에 책이 된다. 봄이 한껏 무르익을 무렵 실컷 누릴 수 있는 들딸기를 살살 훑듯이 책을 만진다. 찔레꽃 잎사귀를 살살 쓰다듬듯이 책을 만진다. 가을바람에 톡톡 떨어진 가랑잎을 사며시 주워 살살 어루만지듯이 책을 만진다. 배고픈 아이를 불러 밥상맡에 앉히고는 김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 내밀고는 머리카락 살살 쓸어넘기듯이 책을 만진다. 복복 비벼서 빨래한 옷가지를 죽죽 물기를 짜고는 탁탁 털어서 옷걸이에 살살 꿰어 널듯이 책을 만진다. 삶으로 스며드는 책이 어여쁘다.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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