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빛 한 줄기
책방마실을 하다가 가끔 책을 덮곤 한다. 책방으로 햇살 한 줄기 들어오는 모습을 느끼면 으레 빛줄기 바라보느라 한참 책에서 눈을 뗀다. 왜 그럴까. 처음 헌책방으로 마실을 가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책방으로 스며드는 햇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책방이든 도서관이든 햇빛과 책 사이를 떨어뜨리려고 애쓴다. 책꽂이에 멀쩡히 두는 책이라 하더라도 햇빛에 곧 바랜다. 햇빛뿐 아니라 형광등 불빛에도 책이 이내 바랜다. 책은 빛을 그리 안 좋아한다. 책은 그늘진 자리를 좋아하고, 책을 읽기에도 그늘진 자리가 알맞다. 누런 만화종이라 하더라도 햇빛이 밝게 비추는 곳에서는 그만 눈이 부셔서 책종이 넘기기 수월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햇살을 좋아하고 햇빛이 눈부신 데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는다. 시골집에서도 햇볕 따사롭게 비추는 평상에 앉거나 모로 누워서 책을 펼치곤 한다.
햇살이 나를 부르는 셈일까. 내가 햇살을 부르는 셈일까. 한참 읽던 책을 덮고는 한참 햇살을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나는 참 햇볕을 좋아하고, 햇살을 즐기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햇볕이 들어오고 햇살이 비추는 자리를 즐기며, 이렇게 햇빛을 느끼는 곳에서 내 마음빛이 부푼다고 느끼는구나 싶다.
빛이 있어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일까. 빛이 있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일까. 마음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샘솟더라도 아이들 재우는 잠자리에서는 글을 못 쓴다. 불을 다 끄고 누웠는데 어찌 글을 쓰는가. 이튿날 일어나서 써야지 하고 생각하면, 이튿날 아침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 쓰자’고 품은 생각마저 잊기 일쑤이다. 깜깜한 밤이라 하더라도 불을 밝히고 빈 종이에 끄적여 두어야 한다. 재미있다면, 불을 켜고 빈 종이에 끄적인 이야기는, 이튿날 아침에 굳이 종이를 들추지 않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샘솟았는지 환하게 떠오른다. 종이에 적바림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다시 떠오르지 않는데.
빛이 있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면, 빛이 있어 빨래도 하고 밥도 짓는다. 빛이 있어 온누리에 푸른 숨결 감돌고, 빛이 있기에 풀을 뜯고 나무를 안으며 꽃을 노래한다. 빛이 있으니 사랑이 있다. 빛이 있기에 꿈이 있다. 빛이 있어 춤노래 흐드러지고, 빛이 있는 터라 품앗이와 두레로 마을잔치 이룬다.
책방으로 빛 한 줄기 흐른다. 아침빛일까 저녁빛일까. 이 빛은 어떤 바람을 이끌고 책방으로 깃들까. 이 빛은 책방으로 찾아온 사람들한테 어떤 책내음 알려줄까. 이 빛은 책방지기 가슴에 어떤 무늬로 스며들까.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