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지시 찾아가던 책방들

 


  책방마실만 즐기던 때에는 어느 책방이고 즐겁게 다녔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책방뿐 아니라 길거리에 깐 좌판도 지나치지 못한다.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여러 해 동안, 간판이 있거나 없는 작은 헌책방과 길거리 좌판을 즐겨 찾아다녔다. 이 사이, 대학교 교육이 이 나라에서는 잔뜩 일그러졌다고 느껴 등록금 댈 돈을 스스로 아름다운 책 장만해서 읽는 데에 쓰자 생각했고,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고 사회로 돌아온 뒤 사진을 배워, 책방마실을 하는 틈틈이 사진을 찍어 보았다. 내가 즐겁게 다닌 책방을 사진으로 담고, 내 마음을 살찌운 책을 고맙게 갖추어 준 책쉼터를 사진으로 옮긴다.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내가 다닌 모든 책방 모습을 내 가슴속에 또렷이 아로새긴다. 사진을 찍은 뒤로는 내 가슴속에 또렷이 새긴 모습을 새삼스레 짚으며, 이날 이곳에서 어떤 책을 만났고 이 책들을 품에 안으며 얼마나 벅차고 설렜는가 돌아본다. 이제는 사라진 책방을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책방 옆에 있던 더 일찍 사라진 책방을 그린다.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다른 사라진 책방을 그리고, 내가 모르는 지난날 일찌감치 사라진 책방을 그린다.


  책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책이 있지. 헌책방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 헌책이 있지. 책방에 있는 책은 무엇인가. 삶을 살찌우는 길동무가 되는 책이지.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무엇인가. 누군가 따사롭게 사랑하며 마음으로 새겨읽은 밥 한 그릇과 같은 책이지.


  새책방에서 만나는 책들한테는 내가 첫사랑을 베푼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들한테는 내가 두사랑 또는 세사랑 또는 네사랑을 나누어 준다. 첫사랑도 나한테 애틋하고, 두사랑과 세사랑과 네사랑 또한 나한테 살갑다. 사랑은 차례나 번호를 매기지 않으니까. 사랑은 그예 사랑일 뿐이니까. 책은 모두 책이요, 아름다운 마음밥은 늘 아름다운 마음밥 되어 내 삶을 북돋는 웃음꽃 되니까. 4346.11.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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