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의 모험 1 - 무민, 도적을 만나다
토베 얀손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5

 


빛으로 가득한 온누리
― 무민의 모험 1 무민, 도적을 만나다
 토베 얀손 글·그림
 김대중 옮김
 새만화책 펴냄, 2013.9.30.

 


  한밤에 작은아이가 끙끙대며 일어납니다. 다른 날에는 끙끙대기만 하는데, 오늘은 스스로 일어나서 방문을 열려고 영차영차 밉니다. 쉬가 마려웠구나. 오늘은 아버지가 네 끙끙 소리에 미처 못 일어났네. 미안하면서 고맙다. 너 스스로 쉬 마렵다고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구나.


  아이 바지를 내리고 쉬를 누입니다. 쉬를 눈 아이는 다시 잠자리에 눕습니다. 이불을 여밉니다. 큰아이 이불도 함께 여밉니다. 한동안 토닥토닥하고 나서 오줌그릇 들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오줌그릇 비우면서 누렇게 시든 풀밭에 쉬를 눕니다.


  밤하늘 올려다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면 밤하늘 고운 빛을 실컷 누립니다. 도시에서는 이토록 곱게 새까만 빛을 누리지 못해요. 동그라니 빛나는 보름달은 수많은 별빛을 가라앉힐 만큼 밝습니다. 달빛 사이로 흐르는 구름을 봅니다. 구름빛도 달빛도, 또 보름달 빛살에 가리는 별빛도 다 함께 곱습니다. 깊은 밤에 아이들 밤오줌 누이느라 잠에서 깨야 하는 이무렵, 서늘하게 부는 밤바람 쐬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잠은 덜 자더라도 밤빛을 누리도록 해 주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 “손님을 접대하는 건 멋진 일이지. 그렇다면 지금 느낌보다는 훨씬 행복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자기가 자기 침대에서 잘 수 없다니, 웃기는 세상이군. 왜 나는 ‘아니’라고 말 못하는 거지?” (6쪽)
- “안 돼! 뭔가 황당하고 확 깨는 걸 만들어야 해!” “하지만 난 그런 성향은 아닌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유명해지고 부자가 될 건데?” “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18쪽)

 

 


  십일월 한복판을 지나니, 이제는 밤에 노래하는 풀벌레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고즈넉합니다. 그래도 깊은 멧골에서는 더러 풀벌레 몇 남았지 싶으나, 십일월 막바지에 닿으면 깊은 멧골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는 사그라들 테지요.


  그예 고요한 겨울이 다가옵니다. 바람 부는 소리 가득한 겨울이 찾아옵니다. 전남 고흥은 아직 눈이 안 내리니 퍽 늦게까지 풀벌레 노래 있었지만, 일찌감치 꽁꽁 얼어붙었을 북쪽 시골이나 멧골에서는 더 일찍 풀벌레 노랫소리 수그러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되든, 시골에서는 풀밭에서 풀노래 흐르고 풀내음 감돕니다. 늦가을과 첫겨울에 모든 풀들 시들더라도 바람 따라 사각사각 나부끼는 소리 떠돕니다.


  빛은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습니다. 빛은 냇물에도 있고 바닷물에도 있습니다. 맑은 빛이 하늘에서 드리우며 온누리를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밝은 빛이 들과 숲에서 샘솟아 온누리를 푸르게 어루만집니다. 싱그러운 빛이 냇물에서 흘러 들판을 적십니다. 상큼한 빛이 바닷물에서 돌고 돌아 온 땅을 포근하게 쓰다듬습니다.


  햇빛은 무지개를 빚습니다. 햇볕은 뭇목숨을 빚습니다. 햇살은 사랑을 빚습니다. 사랑받아 태어난 목숨들은 서로 눈빛을 밝혀 이야기를 빚습니다. 꿈을 꾸는 목숨들은 저마다 어깨동무를 하며 삶을 빚습니다.


  물빛이 맑아, 이 맑은 물 마시는 이들은 마음빛을 따사롭게 돌봅니다. 바람빛이 고우니, 이 고운 바람 마시는 이들은 생각빛을 넉넉하게 보살핍니다. 빛을 먹으며 새로운 빛이 됩니다. 빛을 마시며 새삼스레 아름다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 “하지만 우리 무민은 어쩌구요?” “무민은 알아서 잘 지낼 거야. 나랑 같이 가자구!” … “어쩌나, 어쩌지, 어쩐다? 몸은 하난데 마음은 둘이니! 무민 아빠와 동굴에서 살고 싶지만, 어떻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남겨 두고 떠난단 말야!” (37쪽)
- “그래, 이 사기꾼, 강도, 나쁜 말들 발송자야! 난 너에게 아무것도 상속하지 않을 테다!” “아, 감사합니다. 아줌마! 지금 저한테 돈은 그저 두려운 것일 뿐이죠. 아시죠, 아줌마? 살면서 언젠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린 그저 재미로 그 말들을 보냈던 거예요. 진심으로 아줌마를 사랑한다구요!” (45∼46쪽)

 

 

 


  토베 얀손 님이 빚은 만화책 《무민의 모험 1 무민, 도적을 만나다》(새만화책,2013)를 읽습니다. 얼마나 오래된 만화책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스웨덴에서 건너온 이 오래된 만화책에 담은 오래된 이야기란, 머나먼 옛날 이야기 아닌, 바로 오늘도 즐겁게 읽고, 먼먼 앞날에 이르기까지 기쁘게 마주할 이야기라고 깨닫습니다.


  몸을 살찌우는 물과 바람은 아주 오래된 물과 바람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또 오늘부터 다시 먼먼 앞날까지 이어갈 오래된 물과 바람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지구별 처음 태어날 적에 흐르던 물이요, 앞으로 수천만 수억만 해 뒤에도 이 지구별에서 살아갈 아이들 마실 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시는 바람도 그 옛날 지구별 처음 태어나던 무렵 흐르던 바람이면서, 앞으로 수백만 수백억 해 뒤에도 우리 뒷사람 마실 바람입니다.


- “상상해 봐, 남쪽의 쭉 뻗은 도로, 미모사나무와 야자수.” “하지만 집에선 앵초가 막 피는 중이었는데. 게다가 내가 베란다를 칠해도 된다고 엄마랑 약속까지 했는데. 파란색으로 말이지.” (48쪽)
- “엄마! 스노크가 이상한 놈이랑 놀고 있어요.” “그렇구나, 얘야. 여기 해변에서 사는 건 우리 도덕성에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도 더 이상은 못 견디겠대. 여기 앉아서 열 좀 식히자.” (56쪽)

 


  스웨덴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사랑하는 ‘무민’은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한갓진 시골 숲자락에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무민은 풀바람을 마십니다. 풀을 먹습니다. 풀꽃을 사랑하고 풀숲에 드러누워 풀빛을 실컷 누립니다.


  무민은 풀과 함께 살아가며 풀마음 됩니다. 무민은 숲속에서 살아가며 숲마음 되어요. 무민을 낳은 어머니도 풀과 숲을 사랑합니다. 이와 달리 무민을 낳은 아버지하고 무민하고 짝을 이루는 옆지기는 풀과 숲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무민은 식구들과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지만, 무민네 아버지와 옆지기는 자꾸 무민을 이끌고 이리저리 다닙니다. 모험이랄까 여행이랄까, 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서려 해요.


  그러면, 무민이 살아가는 시골에는 새로운 무언가 없을까요? 무민이 봄날 사랑하고 싶은 앵초꽃에는 새로운 빛이 없을까요? 해마다 또 피고 다시 피니까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될까요?


- “이렇게 한꺼번에 다 지불하면 깜짝 놀라겠지! 됐나요?”“거스름돈 50만 파운드입니다, 아가씨.” “아, 그냥 가지세요. 그런 푼돈은 됐어요.” (61쪽)
- “정말 끝내주는군! 이거 진짜 보헤미안을 만난 거잖아!”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 “나만의 작은 오두막에서 듣는 빗소리. 가난하다는 건 정말 멋진 거야. 가난을 즐기는 게 낭만적이긴 하지만, 지붕으로 비가 새는 건 좀. 그리고 새벽엔 너무 춥고.” (65쪽)


  여행 또는 모험을 마친 무민네 아버지와 옆지기는 시골로 돌아갑니다. 여행을 하든 모험을 하든 내내 떠돌지 못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요. 제아무리 재미나거나 신나는 여행이나 모험이라 하더라도 ‘집이 있어’ 떠날 수 있습니다.


  무민이 고즈넉한 시골 한켠 숲속에 조그맣게 보금자리 일구지 않았다면, 아무도 여행이나 모험을 나서지 못합니다. 무민이 풀바람 먹고 숲노래 부르는 삶 일구기에, 무민네 식구들은 여행이나 모험을 나설 수 있습니다.


  빛으로 가득한 온누리인데, 이 빛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빛으로 밝은 지구별인데, 이 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아름다운 삶이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사랑스러운 꿈이란 어디에서 자랄까요. 즐거운 놀이란 어디에서 이룰까요. 재미난 일이란 어디에서 찾을까요.


  모든 빛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모든 꿈은 우리 가슴속에서 자랍니다. 푸른 빛은 우리 마음속에서 싱그럽게 흐드러집니다. 고운 빛은 우리 가슴속에서 활짝 피어납니다. 마음을 읽어요. 푸르게 빛날 마음꽃을 읽어요. 가슴을 열어요. 곱게 봉오리 벌리는 사랑꽃을 가슴 가득 열어 나누어요. 내가 웃으며 옆지기가 웃고, 내가 노래하며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내가 즐겁게 일하며 이웃들이 즐겁게 일하고, 내가 기쁘게 뛰놀며 동무들이 서로 어깨를 겯고 기쁘게 뛰놉니다.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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