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펴낼 돈 모으는 마음

 


  2007년부터 내 서재를 사진책도서관으로 꾸며 문을 연 뒤 ‘1인 잡지’를 내놓습니다. 서재도서관이자 사진책도서관인데, 이렇게 도서관지기를 하기 앞서도 ‘1인 소식지’를 내놓았습니다. 나는 1994년에 ‘우리 말 동아리’를 하나 꾸리면서 동아리 사람들과 ‘우리 말 소식지’를 내고 싶었는데 아무도 글을 써 주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글을 쓰고 엮어서 ‘1인 소식지’를 냈습니다. 1998년에 ‘헌책방 사랑 동아리’를 새로 꾸리면서 ‘헌책방 소식지’를 ‘1인 소식지’로 함께 냈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를 꺼리지 않아요. 그러나, 모두들 바쁘다고만 말하니 바쁜 사람들한테 안 바쁜 때가 찾아오기까지 기다릴 수 없더군요. 얼결에 혼자서 글을 쓰고 엮어서 내놓은 뒤 혼자서 봉투에 담아 풀을 발라 우체국에 들고 가서 부치는 일까지 다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바쁜 사람은 글을 쓰지 못합니다. 바쁜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합니다. 참말 바쁘다 하더라도 몸을 바지런히 놀리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추스를 수 있어야 글을 쓰거나 읽습니다. 느긋한 마음이 될 때에 쓰는 글이요 읽는 글입니다. 소식지나 잡지나 단행본을 낼 적에도,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야 해요. 바쁜 몸과 마음이 되면 어느 하나 하지 못해요.


  지난 1995년부터 올 2013년까지 낸 숱한 ‘1인 소식지’와 ‘1인 잡지’와 ‘1인 단행본’을 떠올립니다. 어느 때고 돈이 있어서 이 책들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으레 돈에 시달리면서 하나하나 내놓았어요. 없는 돈을 뽑아냈고, 정 힘들면 돈을 꾸어서라도 냈습니다. 그날그날 살림돈이 빠듯하더라도 아무튼 소식지나 잡지나 단행본을 혼자서 내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참말 끼니를 굶고 단골가게에 라면 몇 봉지 외상으로 달면서 책을 엮었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며 소식지를 내던 때, 학교 선배들은 흔히 밥이나 술을 사 주겠다 얘기했어요. 나는 밥도 술도 안 사 주어도 되고, 밥값만큼 또는 술값만큼 소식지 낼 돈을 보태어 달라 말했어요. 그런데 선배들은 밥이나 술은 사 주어도, 소식지 내는 돈에 천 원이나 삼천 원 보태어 준 이는 없었어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글을 씁니다. 더 널리 알리고 싶은 삶빛이 있기에 소식지나 잡지나 단행본을 꾸립니다. 두고두고 건사하거나 즐겁게 밝히고 싶은 사랑이 있기에 씩씩하게 봉투에 책을 담아 우체국으로 들고 가서 부칩니다.


  전남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여덟 권째 내놓을 ‘1인 단행본’ 찍을 돈 32만 원을 모으기까지 일곱 달이 흐릅니다. 80부 빠듯하게 내놓아 32만 원입니다. 올 한 해 옆지기를 미국에 배움길 떠나도록 하는 데에 밑돈을 대느라 이쪽에 온힘을 쏟다 보니 두 달에 한 차례 30∼50만 원쯤 그러모아 책 하나 내는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11월에 ‘1인 단행본’ 하나 내놓은 다음 2014년 1월에 새 ‘1인 단행본’을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즐겁게 살림 꾸리면서 푼푼이 그러모으면 1월이든 2월이든 기쁘게 선보일 수 있겠지요. 예전에 혼자 살 적에는 끼니를 굶어도 소식지를 냈지만, 이제는 옆지기와 아이들 있으니 끼니를 굶지는 않아요. 식구들 밥을 먹이는 일이 첫째고, 책 내는 일은 둘째입니다.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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