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여관을 찾다가

 


  대구 삼덕동에 있는 작은 출판사 ‘사월의눈’ 책잔치를 조촐하게 마친 때는 밤 열두 시 반 무렵. 이제 나는 잠잘 곳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나? 골목을 뚜벅뚜벅 걷다가 큰길로 나온다. 좀처럼 여관 불빛이 안 보인다. 한참 걸은 끝에 목욕탕 굴뚝과 여관 불빛을 본다. 이리 갈까 하다가 한 군데 더 나오기를 바라며 걷는데, 내가 걷는 길 쪽에 모텔이 있다. 그런데, 들어가는 문을 새카맣게 발라 속이 안 보인다. 어딘가 꺼림칙하구나 싶어 목욕탕여관으로 가기로 한다. 목욕탕여관으로 가는데, 조금 앞서 지나간 큰길에서 술에 절은 자동차 한 대 전봇대를 아주 세게 들이받는다. 문득 저 사람 죽지는 않았겠네,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이는 죽으려고 술을 퍼마신 뒤 자동차를 몰았겠다고 느낀다. 목욕탕여관 문간에 선다. 딸랑이도 안 울리고 아무 소리도 없다. 이곳 여관지기 방은 불이 꺼졌고 문은 닫혔으며 안 열린다. 한참 덩그러니 서서 기다리다가, 다른 곳을 찾을까 생각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시내에서 떨어진 데라 시내로 가기까지 멀고, 어느새 한 시가 가까우니 그렇게 걸어가고 싶지도 않다. 피시방에 가서 걸상에 기대어 잘까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한숨 포옥 쉰 뒤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1층과 2층이 목욕탕이고 3층이 여관이다. 밖에서 볼 적에 불 켜진 방이 한 군데도 없었다. 빈방이 있을까 싶어 문 손잡이를 살그머니 돌린다. 열린다. 아무도 없는 빈방이 있다. 신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바닥에 이불을 반만 펼쳐 드러눕는다. 조금만 등허리를 펴고 다리를 쉬었다가 피시방에 가자고 생각한다. 두 시간 누워서 등허리를 펴니 이렁저렁 살 만하다. 기운이 다시 난다. 때를 살피니 새벽 세 시 반이 살짝 지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다시 눕는데, 잠이 올 듯하지는 않다. 일어나서 가방을 메고 신을 꿴다. 시골집에서도 새벽 두어 시 무렵 일어나서 글을 쓰니, 피시방에 가서 글을 쓰기로 한다. 아침 아홉 시까지 글을 쓰고는 대구시청 둘레 헌책방에 들러 책내음 맡은 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자. 순천에서 다시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타자.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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