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밤, 술

 


  고흥에서 길을 나선다. 순천버스역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서 진주로 온다. 진주에서 다시 대구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대구 삼덕동에서 사진벗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잠잘 곳을 찾아 골목을 걷는다. 이때 갑자기 와장창 깨지는 소리 들린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자동차 한 대 전봇대를 들이받으며 50센티미터 즈음 하늘로 붕 떴다가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진다. 저 자동차, 틀림없이 술을 마신 뒤 몰았구나. 술도 조금 아닌 많이 퍼마신 뒤 몰았구나. 그런데 몇 초쯤 뒤 이 자동차가 다시 길을 간다. 엄청나게 전봇대를 들이받았는데 멀쩡하게 제 갈 길을 간다.


  시골이었으면 저 자동차는 틀림없이 논바닥에 처박았거나 못에 풍덩 뛰어들었거나 벼랑에서 굴렀으리라. 도시이니, 처박을 논바닥도 빠질 못도 떨어질 벼랑도 없다. 그런데, 전봇대 아닌 가게를 들이받았다면, 길을 가던 사람을 들이받았다면, 참으로 끔찍하다.


  왜 술을 마시고 자동차를 몰까. 왜 술을 마셨으면 택시를 안 탈까. 자동차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면 요즈음 아주 많은 대리운전을 불러야 할 노릇 아닌가. 술을 퍼마신 뒤 자동차 모는 이들은 여느 때에 자동차를 어떻게 몰까. 도시에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가. 그리고, 시골에서 막걸리와 소주 아무렇지 않게 들이부은 뒤 경운기며 짐차며 모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가.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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